時事論壇/國際·東北亞

[최유식의 아웃룩] 소련의 실패 '반면교사 매뉴얼' 따라 움직이는 중국

바람아님 2019. 8. 21. 07:22

(조선일보 2019.08.21 최유식 중국전문기자)

막오른 신냉전, 버티는 중국… "우리는 소련처럼 안 당한다"
중국 포치 강공 뒤엔 "무역전쟁 1년 해 보니 버틸 만하다" 계산
미국 내 反中 정서 폭넓어… 미·중 관계 개선 쉽지 않을 것


최유식 중국전문기자최유식 중국전문기자

중국 공산당 내 전략가들과 관변 싱크탱크들이 구소련 해체 20주년인 2011년부터 10년 가까이

매달려온 연구 주제가 있다. 소련 패망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다.

1980년대 세계 3위 경제 대국으로 40년 가까이 미국과 패권을 다퉜던 소련이 무너진 원인을 분석해

다가올 미·중 경쟁에 대비하겠다는 뜻이다.


중국이 꼽은 교훈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 어떤 경우에도 공산당 통치의 고삐를 놓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서방 민주주의에 기울어 섣불리 공산당 일당 독재를 포기하고

언론 자유를 허용한 것이 소련 패망을 부른 가장 큰 실책이었다는 것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집권 후 공산당 통제를 대폭 강화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또 하나는 미국과 소모적인 체제 경쟁을 벌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소련이 레이건 미 행정부의 경제 전쟁과 군비 경쟁 전략에 휘말려 붕괴된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이 작년 미·중 무역 전쟁이 시작된 이후 줄곧 미국에 양보하면서 타협을 모색한 것은 이런 분석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무역 전쟁이 과학기술, 금융, 군사 분야 등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중국의 이런 희망은 실현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


◇난타전으로 가는 미·중 신냉전


미·중 무역 전쟁은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 조치에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 수입 축소와 위안화 환율 절하(위안화 가치 하락)로

대응하면서 난타전으로 치닫고 있다. 사실상 신냉전의 막이 올랐다.


미국의 대중 공세는 경제를 넘어 지정학적 이슈와 군사 분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18일과 19일 잇달아 홍콩 시위 사태와 관련해 중국에 경고 발언을 했다.

미 국무부는 지난 16일 대만에 최신형 F-16V 전투기 66대를 판매하는 계획을 의회에 통보했다.

중국이 민감해하는 '하나의 중국'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린 것이다.

앞서 지난 2일에는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서 탈퇴하고 중국을 겨냥해 아시아 지역 동맹국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중국도 맞대응에 나섰다.

지난 6월 말 일본 오사카 미·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 조치를 취소했고,

이달 들어서는 달러당 위안화 환율을 7위안대로 끌어올리는 포치(破七)를 단행했다.

환율을 절하하면 그만큼 중국산 제품의 달러 표시 가격이 싸져 늘어나는 관세를 상쇄할 수 있다.


줄곧 수세였던 중국이 공세로 전환한 데는 미국이 소련처럼 중국을 고사시키려 한다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 협상 타결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위융딩(余永定) 중국사회과학원 학부위원은 지난 6월 베이징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미·중 무역 전쟁은 무역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중국을 경쟁 상대로 보면서 시작된 것"이라며

 "미국은 기술 전쟁, 환율 전쟁에 이어 중국 기업에 대한 금융 제재, 중국 해외 자산 동결 등의 조치까지 취할 것"이라고 했다.


◇맞대응 나선 중국, "소련처럼 안 당한다"


중국이 맞대응에 나선 데 대해 전문가들은 지난 1년 반 동안 무역 전쟁을 겪으면서 중국이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피해가 없지 않았지만 당초 예상보다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홍콩 사모펀드 PAG그룹의 산웨이젠 회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무역 전쟁이 1년 이상 진행되면서 피해 액수가 통계로 나오는데, 수치를 보면 미국의 승리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미국의 대중 수출은 크게 줄어든 반면, 중국의 대미 수출은 선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작년 2분기 6.7%에서 올 2분기 6.2%로 둔화됐지만 전문가들의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린이푸 전 세계은행 부총재는 작년 방한 당시 "무역 전쟁 여파로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0.5%포인트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무역 전쟁 이후 감소세였던 소비는 경기 부양 정책 효과로 지난 5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중국은 내수 소비의 성장 기여도가 60~70%에 이를 정도로 소비 중심의 경제로 바뀌었다.

반면 수출의 성장 기여도는 10% 내외에 머무르고 있다.

그 점에서 원유 수출과 식량 수입 등 대외 무역에 크게 의존했던 소련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게 중국 측의 주장이다.

관영 환구시보는 지난 5월 '중국은 소련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중국과 소련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면서

"중국은 (소련과 달리) 유럽 국가들과도 지정학적 갈등도 없다"고 했다.


올 상반기 중국의 대미 수출은 2.6% 감소했다. 무역 전쟁 여파가 본격화되는 셈이다.

하지만 중국은 유럽, 동남아시아 지역 수출을 늘리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렇게 미국의 공세를 버티면서 내년 미국 대선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상황이 계산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중국은 더 큰 곤경에 처할 수 있다.

미국 내 반중 정서는 초당적이어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다 해도 상황이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다.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아시아 회귀 전략(Pivot to Asia)'을 내세워 중국을 강하게

압박한 바 있다.

조 러나드(Joe Renouard)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외교 전문지 '더 디플로맷' 기고문에서

"전체주의 중국의 위협에 대한 반감은 미국 의회는 물론 관료 사회, 군부 등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이런 반감은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다"며 "중국이 짧은 기간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