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7.06. 03:15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투자가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한국이 집중할 일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공지능(AI)"이라고 했다. AI가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하고 강대국 패권 경쟁까지 좌우한다는 그의 통찰은 전적으로 옳다. AI는 자율주행·로봇·블록체인 같은 신산업과 의료·바이오 분야, 나아가 군사·안보와 무기체계까지 송두리째 바꿔놓을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중 핵심이다. 미국·중국을 비롯한 모든 나라가 AI 경쟁력 우위에 서려고 국가 자원을 집중 투입하는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AI 전쟁'이다.
과거 한국은 세계 산업의 새 흐름에 민첩하게 올라타던 나라였다. 그런데 지금은 첫째, 둘째, 셋째도 '북한'이고 '선거'다. 한국 정책에서 AI는 우선순위를 매길 수조차 없다. 정책이 없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수십 년 된 낡은 규제와 제도, 관행이 AI의 발목을 잡고 있고 이를 고쳐야 할 정부와 정치권은 제 역할을 포기했다. 'AI의 원유'로 불리는 데이터에 대한 규제부터 최악이다. 의료보험이나 은행·금융회사, 유통기업 등에 축적된 방대한 빅데이터가 있지만 AI 연구자나 기업이 개인정보 보호에 묶여 활용할 수 없다. 정부는 규제를 찔끔 완화한 '데이터 3법'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핵심 규제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나마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세계에서 가장 경직된 주 52시간 근로제로 기업 AI 개발 부서나 연구기관들이 오후 6시만 되면 컴퓨터를 강제로 끄고 연구·개발자들을 퇴근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세계의 천재급 두뇌들이 휴일도 없이 밤샘하며 AI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경쟁이 되겠는가.
AI 연구·교육 허브라며 출범시킨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은 학생들을 가르칠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AI 인재를 데려오려 했지만 "미 MIT는 1조원의 AI 기금을 조성했다"는 말을 듣고 스카우트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다고 한다. 정부는 AI 인재 육성 대학원 3곳을 선정했지만 이곳들도 교수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온갖 규제에다 연구실 컴퓨터를 강제로 끄는 나라에 어떤 AI 인재가 오겠나.
현재 한국의 AI 기술력은 미국보다 2.4년 뒤진 것으로 평가된다. AI에서 2년은 제조업의 20년 격차 이상이다. 중국은 미국과 AI 패권을 겨룰 수준이고, 일본은 초중고 100만명, 대학·대학원 50만명에게 AI를 가르친다. 지난 4월 정부 주도의 유일 인공지능연구원에 기자가 방문했더니 사람 한두 명과 먼지를 뒤집어쓴 채 전원이 꺼진 컴퓨터 수십 대뿐이었다. 빈 창고가 따로 없었다. 전 정권 때 생긴 곳이라고 지원이 끊겼다고 한다. 대체 이 나라가 왜 이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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