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7.13 신동흔 기자)
심슨 가족이 사는 법
윌리엄 어윈·마크 T.코너드·이언J.스코블 공편
유나영 옮김|글항아리|492쪽|2만2000원
1987년부터 30년 넘게 방송되고 있는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은 현대의 신화(神話)나 다름없다.
고대 신화가 그랬던 것처럼 대중은 심슨의 이미지를 소비하고 만화 속 인물들에 자신을 투영한다.
첫회부터 아이비리그 출신들이 도맡아 대본을 써왔다는 이 심슨가(家)의 아버지 이름이 '호머'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수학·심리학·신학·정치학·철학 등 각기 다른 분야 저자 스무명이 쓴 18편의 글에는
'칸트주의 관점에서 본 심슨 가족의 도덕 세계' '성(性)정치학으로 본 심슨 가족' 같은 제목들이 붙어 있다.
저자들은 작품 속 인물의 행위를 현실 풍자나 조롱으로 읽어내고, 자신들의 발언을 위한 소재로 삼는다.
예컨대 '리사와 우리 시대의 반(反)지성주의'라는 글에선 "심슨가의 딸 리사의 채식주의는 알고 봤더니 교조적이고
일관성이 없다"
"유토피아에 대한 발언은 공공선으로 위장한 권력 장악 기도가 되는 경향이 있다" 같은 진술을 통해
진보 지식인들의 허위의식을 고발한다.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 현대 사회를 풍자하는 가족 시트콤이다. /글항아리
2001년 이 책이 나온 뒤 UC버클리에 '심슨 가족과 철학'이 개설되고,
글래스고대에는 '뜨악! 심슨 가족으로 입문하는 철학' 강좌가 개설됐다.
2000년대 들어 미국 지식인들이 TV 만화를 내러티브 소재로 삼았다는 것은 문화 권력의 중심이 어디로 넘어갔는지
시사한다. 한국 역시 스토리텔링의 주도권이 대중문화로 넘어온 지 오래인데, 지식인 사회는 짐짓 못 본 체한다.
K팝, K드라마가 맹위를 떨치는 시대에 한국 대중문화를 소재로 한 진지한 연구 성과물이 나올 때도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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