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뉴스와 시각>조국 죽창歌의 엉뚱한 겨냥

바람아님 2019. 7. 17. 08:24
문화일보 2019.07.16. 11:30


집권여당과 청와대가 한·일 갈등의 최전선에서 온통 국가 선동에 매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측근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거병(擧兵)론’과 문 대통령의 ‘이순신의 배 12척’에 이어 미국 방문 빈손 귀국길에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의 ‘국채보상운동’ 발언이 나왔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한술 더 떠 ‘청송녹죽(靑松綠竹) 가슴에 꽂히는…’이라며 ‘죽창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인사 검증에 실패해 번번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부담을 안겨준 총책임자가 드라마를 ‘본방사수’하면서 페북질을 할 만큼 한가한 것도 놀랍지만, 대통령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청와대 최장수 수석의 죽창가가 일본이나 미국에 어떤 메시지로 해석될지 심히 걱정된다.


오만하고 무례해 보이기까지 한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복수심은 대한민국 국민의 공통 심리일 것이다. 하지만 ‘선동’과 ‘죽창’, 집단 히스테리적 ‘흥분 상태’로는 외교적 해법을 모색할 수도, 합리적 대안을 만들어낼 수도 없다. 미국 작가 에이모 토울스에 따르면 복수에도 전략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르는 실력이 필요하다. 암굴에 갇힌 당테스는 자신을 음모한 자들에 대한 체계적 복수를 설계하고 인고의 세월을 참아낸 끝에 이를 실행했다. 해적의 포로가 된 세르반테스는 필생의 작품(돈키호테)을 탈고하겠다는 장대한 구상으로 노예생활을 견뎠다. 엘바섬에 유폐된 나폴레옹은 제국 복원을 꿈꾸며 유배지의 진흙길을 걷고 파리떼와 싸웠다. 전쟁에서 패한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의 똥을 핥으면서 기회를 엿봤고 끝내 오를 정복했다. 신성로마제국의 대제 하인리히 4세는 카노사성(城) 앞에서 교황 그레고리 7세에게 무릎을 꿇었지만, 은밀히 세력을 키워 3년 후 교황을 폐위시켰다.


일본의 공세는 조직적이고 전략적이고 지속적이다. 실력 없이는 복수도 없다. 임진왜란 7년간의 전쟁이 끝나고 40년도 안 돼 일어난 병자년 전란 당시 조선의 왕이 청 황제 앞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치욕을 겪은 건 실력 없이는 응전하지 못한다는 진실을 말해준다. 지금 이 정권의 대응이 그렇다. 분열적이고 감정적이고 파편적이다. 미증유의 한·일 갈등과 경제 위기를 맞아 냉정하고 합리적인 대응책을 내놓거나 실력 기르기를 도모하는 대신 무한대결의 집단 광기를 분출하는 데 급급하다. 이들이 하는 일이란 관제 민족주의에 불을 댕기면서 우리민족끼리 논리로 반일 정서를 극대화하는 것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정권이 내세우는 ‘평화’의 속살은 교묘하게 ‘친북’과 닿아 있고, ‘민족주의’ 담론은 ‘반외세 종족주의’와 통한다.


낭만적 친북관과 감상적 항일론을 떠받드는 이들이 권력의 최정점인 청와대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게 문제다. 동학군은 제폭구민(폭정을 제거하고 백성을 구해낸다), 광제창생(널리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제한다), 보국안민(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을 내걸고 거병했다. 조국 수석이 죽창가를 올릴 때는 자신의 반일·반미·반외세 정체성을 커밍아웃하려 했던 것이겠지만, 알고나 있었을까. 동학의 죽창은 청·일이 출병하기 전부터 이미 오랫동안 무능하기 짝이 없는 중앙 조정과 권력의 심장을 겨냥하고 있었다는 것을.

      
허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