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어떻게 희토류 분쟁에서 승리했는가?[동아광장/박상준]
동아일보 2019.07.27. 03:00
희토류 수출 지연 벌어진 중일 갈등 닮아
자민당서 시작했던 '원소전략 프로젝트'
민주당서 종합대책 발전해 최종 日의 승리로
정권 바뀔 때마다 정책 뒤집는 韓과 대비
2010년 9월 7일 센카쿠(尖閣) 열도에서 중국인 선장이 일본 해경에 체포되는 사건이 있었고, 중국의 희토류 수출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지연됐다. 중국인 선장 체포에 대한 보복으로 여긴 일본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이라고 항의했고, 중국 정부는 환경 보호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위반이 아니라고 응수했다. 올해 7월,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의 수출 규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안전보장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WTO 협정 위반이 아니라고 응수하고 있는 것과 많이 닮았다.
2010년은 중국이 G3(주요 3개국)에서 G2로 도약하던 해였다. 2018년 일본 경제는 완전고용을 달성했다. 대담한 도발 이면에 자국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있는 것도 닮은 점이다. 희토류의 일부 광물은 일본 경제의 버팀목인 첨단 자동차 생산에 필수 불가결한 소재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가 한국 경제의 기간인 반도체 산업을 타깃으로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2010년 희토류 수출 규제는 일본이 입을 수 있는 피해의 정도에서 2005년 일본 제품 불매 운동과는 그 급이 달랐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2005년과 달리 무서울 만큼 냉정하게 미래를 위해 움직였다. 우익을 중심으로 각지에서 반중 시위가 벌어졌지만 폭력 사태는 없었다. 중국대사관을 향한 협박도 일절 보도된 바가 없다. 외부의 적이 더 강해지고 위협이 더 거대해졌기 때문에 긴장감도 그만큼 더 컸던 것 같다.
일본은 단기적으로는 희토류 공급 확보에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다. 상사 소지쓰는 2010년 11월 일본 정부 기구인 JOGMEC와 공동으로 2억5000만 달러를 호주 희토류 생산업체 라이너스에 출자했다. JOGMEC의 출자금은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희토류 종합대책’ 예산 1000억 엔의 일부였다. 희토류 분쟁이 있었던 것이 9월, 경제산업성의 대책 발표가 10월, 라이너스에 대한 출자가 11월에 이뤄졌다.
2012년 4월, 일본 대기업 히타치가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는 산업용 모터를 개발했다. 2015년 경제산업성의 보고서에 의하면 희토류 사용량 절감을 위한 기술 개발은 중소기업을 포함한 다수의 기업에서 상업적 진척이 있었다. 기술 개발이 이렇듯 신속히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이미 2007년부터 관련 분야에 대한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문부과학성이 2007년에 착수한 ‘원소전략 프로젝트’다. 20여 개 대학과 기업이 참가한 이 프로젝트에서 대체 재료에 대한 연구에 상당한 성과가 있었고, 2010년 이후 희토류 대체 재료 개발에 그 연구 성과가 응용됐다. 2012년 3월에는 미국, 유럽연합(EU)과 함께 중국의 희토류 수출 규제를 WTO에 제소했고, 2014년 8월 중국의 규제가 WTO 협정 위반이라는 판결을 얻어냈다.
희토류 분쟁은 결국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중국에 대한 희토류 의존도가 2009년 86%에서 2015년에는 55%까지 떨어졌다. 반면, 중국의 희토류 업계는 2014년 적자를 냈다. 희토류 가격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WTO에서 패소한 중국 정부는 2015년 1월 희토류 수출 규제를 전면 철폐했다.
일본 기업은 2010년의 충격을 잊지 않고 지금도 희토류 수요를 줄이기 위한 기술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2018년 2월 도요타자동차는 희토류 사용량을 반으로 줄인 자석의 개발에 성공했다. 그리고 정부의 지원 정책은 정권에 관계없이 일관되게 추진된다. 원소전략 프로젝트는 자민당 정권에서 시작됐고, 희토류 종합대책은 민주당 정권에서 세웠다. 민주당 정권에서 시작된 희토류 관련 기술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사후 평가서는 2015년 자민당 정권하에서 작성됐고,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한국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주요 정부 정책이 원점에서 새로 출발한다. 이전 정부의 정책에 대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후 평가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2019년 한국에서도 기초소재산업 육성에 투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022년 새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2019년의 소동을 기억하고 있을까?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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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모래 위에 지은 '반도체 집'
[중앙선데이] 2019.07.26 16:25
일본의 소재ㆍ부품 수출 규제는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의 약한 곳을 치고 들어오자 국내 정보기술(IT) 산업의 취약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한일은 지리적으로도 가깝기 때문에 글로벌 공급망(Supply Chain) 측면에서도 단단히 엮여 있습니다. 기업은 품질 좋고 싼 원자재와 부품을 조달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국내에 좋은 부품이나 소재가 있다면 문제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물류 측면에서 이점이 있는 주변국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부품 소재는 단기간에 개발하기 힘듭니다. 오랜 기간 인력과 자금을 투자해 기술을 축적해야 합니다. 기술과 인력이 부족한 한국 기업이 부품 소재 분야보다는 조립생산 위주의 완제품 쪽으로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이런 산업 구조는 거칠게 말하면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심지어 경제 부총리나 산업자원부 장관이 새로 들어설 때마다 부품 소재 산업 육성을 강조했습니다만 결과는 늘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였습니다.
중소ㆍ중견 기업은 투자 기간이 길고 위험성이 큰 부품 소재 개발에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설령 개발했다고 해도 대기업이 사주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기 힘듭니다. 대기업도 할 말이 있습니다. 국내 중소기업이 생산한 제품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목소리를 높입니다.
가까운 일본에서 품질 좋은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데 굳이 한국 중소기업을 믿고 기다릴 이유가 없죠. 최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벌인 논쟁은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엇갈린 시각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18년 전인 2001년 ‘소재ㆍ부품 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소재부품 특별법)’이 제정됐습니다. 그뿐이었습니다. 더는 말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일본의 경제 공습을 통해 부품 소재 산업의 중요성을 국민이 인식하게 됐습니다. 필요한 건 실천입니다. 민간에 맡겨 두는 게 우선이지만 현재 한국 산업 구조에서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판을 새로 짜는 획기적인 그랜드 플랜입니다. 정부는 인프라를 깔아야 합니다. 산학연 협업이 가능하도록 장을 만들어 기술 개발을 위한 물꼬를 터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펀드 등을 조성해 기술 개발 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합니다. 기업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연구개발에 참여하도록 세제 혜택과 같은 지원책도 필요합니다.
정부 여당은 이번에 소재부품 특별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언젠가는 무너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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