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7.31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일연 스님이 쓴 '삼국유사'에는 훗날 백제 무왕이 되었다는 서동과 신라 선화공주 사이의 사랑 이야기가 실려 있다.
마를 캐 생계를 유지하던 서동이 선화공주가 절세미인이라는 풍문을 듣고 서라벌로 가서 '공주가 서동을 몰래 숨겨두고
정을 통한다'는 내용의 노래를 퍼뜨린다.
급기야 그 말이 왕의 귀에 들어가자 공주는 궁에서 쫓겨나고 서동이 그녀를 아내로 맞았다고 한다.
금동제 목관 장식, 소왕묘, 국립중앙박물관.
서동요는 몇 안 되는 신라 향가이기에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고, 배경이 신분과 국경을 넘는 '러브 스토리'라는 점에서
대중적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2009년 선화공주의 존재를 위태롭게 만든 '사건'이 생겼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출토된 사리봉영기(舍利奉迎記)에 '백제 왕후께서는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따님'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이다. 사택씨는 백제의 유력한 귀족이므로 신라 공주가 사택 왕후일 수는 없다.
이 발굴로 선화공주가 가공인물이라는 주장이 유력해졌지만 무왕에게 여러 부인이 있었을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됐다.
그 후에도 선화공주의 흔적을 찾으려는 노력이 지속되어 일제강점기에 발굴한 익산 쌍릉(대왕묘·소왕묘) 중 하나를
선화공주 무덤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2018년 대왕묘에서 수습한 인골이 641년 세상을 뜬 무왕의 유해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됨에 따라
이 무덤은 선화공주 무덤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올해 4월부터는 또 다른 후보인 소왕묘를 발굴하고 있다.
1917년 발굴 때 무덤 안에서 백제 왕릉 출토품에 준하는 금동제 목관 장식이 수습된 점을 고려하면 무덤 주인공은
왕족일 가능성이 있다.
많은 사람은 소왕묘에서 선화공주의 실체를 밝힐 결정적 단서가 확인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이미 발굴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 발굴 작업에서 새롭게 선화공주 관련 유물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
어쩌면 고고학 발굴로는 영원히 밝혀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우리 민족의 역사와 이야기에 살아 숨 쉬는 선화공주가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人文,社會科學 > 歷史·文化遺産'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75] 가야사 쟁탈전 (0) | 2019.08.14 |
---|---|
'귀걸이에 거울까지'..폼페이서 2천년된 여성 장신구 대거 발굴 (0) | 2019.08.14 |
"과거시험 보다가 다리 부러진 이순신" 출처를 아십니까? (0) | 2019.07.16 |
[단독]가야시대 토기의 최고 걸작 나왔다 (0) | 2019.07.15 |
[청계천 옆 사진관]556년 전 '두부찜' 진관사에서 재현, 어떤 맛일까 (0) | 2019.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