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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10] 이타주의

바람아님 2013. 12. 30. 09:06

(출처-조선일보 2011.05.09.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스탈린 시대 강제노동 수용소의 삶을 그린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수용소 군도' 등으로 197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솔제니친의 글 중에 '모닥불과 개미'라는 짤막한 수필이 있다. 타오르는 모닥불에 통나무 한 개비를 던져 넣었다가 그 안에 개미집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황급히 끄집어냈는데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개미들이 다시 불 속으로 뛰어드는 걸 보며 솔제니친은 다음과 같이 적는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자기 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일까? 많은 개미들이 활활 타오르는 통나무 위로 기어올라갔다. 그러고는 통나무를 붙잡고 바동거리면서 그대로 거기서 죽어가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 처음 읽은 이 글은 끝내 내 마음 한복판에 똬리를 틀고 앉아 나를 사회생물학이라는 학문으로 밀어 넣었다. 인간을 비롯하여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모든 동물들의 진화를 연구하는 학문인 사회생물학의 중심 과제는 바로 자신이 피해를 입는 상황에서 어떻게 남을 돕는 행동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이타주의의 진화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가장 탁월한 것은 단연 '해밀턴의 법칙'이다. 해밀턴에 따르면 심지어 자신은 번식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개체들이 얻는 유전적 이득이 자신이 치르는 희생의 대가보다 크기만 하면 이타적 행동도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보다는 내 가족을 먼저 챙기기 마련이다.

과학학술지 '플로스 바이올로지(PLoS Biology)' 최신호에는 이 같은 이타주의적 현상이 개미와 인간은 물론, 로봇 사회에서도 진화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소개되었다. 매우 기본적인 신경 조직을 갖춘 로봇들에게 서로 유전적으로 얼마나 가까운지를 알려주고 협동과제를 풀게 하는 실험을 실시한 다음 그걸 바탕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더니 해밀턴의 예측이 정확하게 들어맞더라는 것이다. 과학분야의 영원한 베스트셀러 '이기적 유전자'에서 리처드 도킨스가 반복하여 설명하듯이, 개미와 로봇의 이타적 현상도 유전자 수준에서 보면 결국 이기적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것도 아닌 일본인 주정뱅이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이수현씨의 희생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불로그내 저자의 유사 주제 : [243] 솔제니친과 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