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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40] 라스푸틴

바람아님 2013. 12. 29. 09:54

(출처-조선일보 2011.12.09.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라스푸틴러시아 역사상 가장 특이한 인물 중 한 명이다. 농민 출신의 러시아정교 수도사인 그가 황실에 접근하게 된 계기는 어린 황자 알렉세이의 혈우병 치료였다. 의사가 치료를 포기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황후 알렉산드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치료사인 라스푸틴을 불러들였는데, 그는 실제로 기도를 통해 알렉세이의 병세를 호전시켰다(아마도 최면술로 스트레스를 완화시킨 것이 주효했으리라 보인다). 황후는 라스푸틴을 신이 러시아를 구원하기 위해 보낸 성자로 받아들였고, 이로 인해 라스푸틴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차르 니콜라이 2세는 개인적으로는 선량하며 신심 깊은 인물이었지만, 정치적인 역량은 형편없었다. 그의 판단력이 얼마나 어두운지는 라스푸틴 같은 믿을 수 없는 인물이 국정을 농단하고 인사를 좌우하도록 내버려 둔 데에서 알 수 있다. 1차대전이 발발하자 라스푸틴은 차르가 직접 전선에 나가 군대를 지휘해야 승리한다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차르가 전선으로 향하자 정치는 더 불안정해졌다. 그러는 동안 황후를 사실상 정신적으로 지배한 라스푸틴은 자신이 선택한 인물들을 정부 관료로 추천할 수 있었다. 한 역사학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속이 좁고 반동적이며 히스테리 상태의 여인과 무지하며 기괴한 농민이 제국의 운명을 수중에 넣었다"고 표현했다.

1916년 우파 정치 지도자와 황실 인사들이 주도하여 라스푸틴을 암살하였다. 암살에 참여했던 펠릭스 유수포프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은 라스푸틴에게 다섯 사람을 죽일만한 양의 청산가리가 들어간 빵과 포도주를 먹인 후 등에 총을 쐈다. 그런데도 라스푸틴이 살아나자 그들은 다시 총 세 발을 더 쏘고 몽둥이로 가격한 다음 몸을 묶고 카펫으로 둘둘 말아 네바강에 던져 넣었다. 사흘 뒤에 발견된 시체를 검시한 결과에 의하면 라스푸틴은 묶은 줄과 카펫을 헤치고 나와 헤엄치다가 익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1917년 2월혁명 후에 사람들이 매장된 라스푸틴의 시체를 파내서 불태웠을 때에는 불붙은 시체가 벌떡 일어나 앉은 모습으로 변해 다시 한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순수한 신앙심을 가지고 소박한 삶을 사는 러시아 농민들만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신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 그런 태도가 전근대적이고 가혹한 차르 체제를 온존시키고 라스푸틴 같은 괴이한 인물이 활개치도록 만든 셈이다. '신성함'이 정치에 영향을 미치면 자칫 코미디 같은 비극이 벌어질 위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