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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39] 로또 권하는 사회

바람아님 2013. 12. 28. 10:41

(출처-조선일보 2011.12.02. )


복권의 역사는 참으로 길다. 기원전 2~3세기 고대 중국의 한나라에서 성벽 축조와 같은 공공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복권을 발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로마 제국에서도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로마 시 재건축 비용을 모으기 위해 복권을 발행했다. 다만 이때에는 당첨된 사람들에게 돈을 준 것이 아니라 값비싼 물품을 주었다. 물품이 아니라 돈을 주는 방식의 복권 사업에서는 네덜란드가 선구자였다. 네덜란드의 여러 도시에서 성벽을 보수하고 빈민들을 구호하는 자금 마련을 위해 복권을 발행한 기록들이 많이 보인다. 15세기에 위트레흐트나 브뤼주 같은 도시들이 복권을 발행했고, 17세기에는 국영 로또 운영소(staatslotterij)가 만들어져 대규모로 사업을 운영했다. 당시의 사회상을 나타내는 그림에는 암스테르담 시민들이 로또 복권 판매소에 서로 먼저 들어가기 위해 아수라장을 이룬 광경이 그려져 있다.

로또가 크게 유행하는 사회는 어떤 곳일까?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본 바에 의하면, 경제 성장이 가속화되어 사회에 많은 돈이 굴러다니는 곳에는 특이한 현상들이 나타난다. 일부 계층이 많은 돈을 벌어 거부가 되면 다른 사람들 역시 빨리 거액을 만져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될 수는 없으므로 빈부격차가 벌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면 무력을 행사하여 강제로 남의 돈을 빼앗으려는 강도, 혹은 남을 속여 돈을 차지하려는 사기가 횡행하고, 다른 많은 사람은 운에 기대 큰돈을 벌려는 헛된 희망을 품고 로또에 매달리게 된다. 17세기의 네덜란드가 전형적으로 그랬고, 아마도 20세기 후반 이후 한국 사회 역시 그와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하게도 거액의 당첨자가 오히려 그 때문에 불행해졌다는 기사를 가끔 신문지상에서 접하곤 한다. 예컨대 2005년에 85만 파운드(약 15억원)의 상금을 탔지만 5년 만에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영국의 한 청년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거액을 손에 쥐었을 때 왜 어떤 사람은 그로 인해 행복해지고 또 어떤 사람은 오히려 더 불행해질까? 일본의 한 저명한 정신과 의사는 이에 대해 아주 쉬운 설명을 제시했다. 로또에 당첨되고 행복한 사람은 원래 행복했던 사람이고, 로또에 당첨되고 불행한 사람은 그 이전에 이미 불행했던 사람이다. 돈은 행복의 중요 요소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아닌 모양이다. 아무리 로또가 가난한 사람을 돕는 기능을 한다고 치장하지만, 사행심을 부추기는 이런 사업이 크게 유행하는 것은 결코 건강한 현상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