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통일연대稅 없애는 독일
조선일보 2019.08.22. 03:13
올라프 숄츠 독일 재무장관이 이달 초 '졸리(Soli)'라고 부르는 통일연대세(稅)를 2021년부터 폐지하겠다고 했다. '졸리'는 독일에만 있는 역사적인 세제(稅制)다. 통일 직후인 1991년 뒤처진 동독 개발 비용을 조달하려고 도입했다. 개인·기업을 망라해 모든 납세자가 소득의 5.5%를 낸다. 작년에만 189억유로(약 25조2500억원)를 거둬들였다. 독일 정부는 '졸리'를 밑천으로 통일 이후 옛 동독에 2조유로(약 2672조원)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다.
결과는 신통치 않다. 베를린을 제외한 옛 동독 지역의 요즘 인구는 1360만명으로 통일 당시 1700만명에서 340만명 줄어들었다. 낙후된 고향을 등진 사람이 많다. 독일 500대 기업 중 옛 동독 지역에 자리 잡은 회사는 7%인 36곳에 그친다. 경제성장률을 갈라보면 옛 서독은 2.3%고, 옛 동독은 1.4%다(2017년). 균형 발전을 위해 할 만큼 했으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중단하자는 요구가 거셌다. 그래서 독일 정부는 '졸리'의 일부를 다른 분야에 쓰며 동독 투자를 점점 줄여왔고, 이제는 아예 없애기로 했다.
둘로 나뉜 경제를 합쳐본 독일의 길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 기념사에서 국내외 연구 결과라는 단서를 달아 "통일되면 세계 경제 6위권이 되고 2050년쯤 (1인당) 국민소득 7만~8만달러 시대가 가능하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남북이 부작용 없이 합치면 경제적 상승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안보 리스크가 사라지면 해외에서 투자가 물밀듯 들어올 수도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제시한 장밋빛 미래에 도달하려면 험난한 산을 계속 넘어야 한다. 우선 김정은의 미사일 폭주를 보면 언제 단일 시장을 만들 수 있을지 아득하다. 한 몸이 되기만 하면 당장 세계 10위 이내로 점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계 경제에서 한국 비중은 1.9%이고, 북한의 경제 규모는 남한의 2%를 넘지 못한다. '원 코리아'를 달성해도 단순 산술로는 0.04%포인트 추가된다는 뜻이다. '1.9%+0.04%'가 시너지 효과를 내서 세계 경제의 6%를 차지하는 일본을 따라잡는다는 건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독일인들이 '졸리'를 부담하는 고통이 있었듯 비용 청구서가 우리 국민 앞으로 날아올 것이다. 1990년 통일할 때 동독은 경제 규모로 서독의 17%였고, 1인당 GDP로는 서독의 63%였다. 동·서독 경제력 차이에 비해 남북한 격차가 더 크다. 서독인들보다 우리 국민이 감수해야 할 희생의 강도가 클 개연성이 높다. 남북 단일 경제라는 장밋빛 비전은 반드시 비용 청구서와 구체적인 로드맵이 첨부돼야 현실성 있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시론>홍콩 사태와 연방제 통일 허구성
홍콩 시위, 전면적 민주화 요구
中, 굴복하면 확산된다고 우려
무력 진압설에 和·理·非 대응
港人治港 파기가 사태의 근원
中 공산당 체제 본질 직시하고
‘우리민족끼리’에 속지 말아야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로 지난 3월 31일 시작된 홍콩 시위 사태의 ‘출구’가 보이질 않는다. 평일엔 다소 수그러졌다가 주말만 되면 다시 대규모로 전환되는 시위가 지난 6월 9일 이후 계속되고 있으며, 갈수록 그 규모가 커지고 있다. 시위 주최 측은 6월 9일 제1차 주말 시위 때는 100만 명, 지난 18일 제11차 주말 시위 때는 170만 명이 모였다고 추산했으며, 오는 25일에도 대규모 집회가 예고돼 있다. 이번 홍콩 사태는 특정 법안 문제를 넘어, ‘전면적 홍콩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중(反中) 운동으로 비화하고 있으며,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에 대한 도전 움직임마저 나타나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홍콩 시민의 ‘급진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티베트 등 소수민족의 일부 지도자가 홍콩 수준의 자치권을 요구하는 ‘일국다제(一國多制)’를 제기하고 있어서 골치 아픈 판인데, 홍콩에 더 많은 자치와 민주화를 보장하면 소수민족의 자치권 확대 요구를 막을 명분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또, ‘굴복’하면, 민주화 요구가 중국 전체로 확산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크다.
그렇다고 무력 진압하자니 한계가 많다. 시위대의 홍콩 국제공항 점거 시위로 한때 홍콩 공항이 폐쇄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무력 진압설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선전만(灣) 홍콩 출입경 검문소에서 불과 2㎞ 떨어진 축구 경기장에 9000명의 무장경찰부대를 집결시켰으며, 무장경찰과 공안이 선전에서 시위 진압 대규모 연합 훈련을 하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에 시위대는 평화·이성·비폭력을 뜻하는 ‘화이비(和理非)’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의 무력 개입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19일 시위대는 ‘지하철역 청소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칫 잘못 진압하다가 제2의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벌어지면 국제 여론의 비난을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31일이 고비로 보인다. 지난 2014년 8월 31일 홍콩 행정장관 간접선거제를 결정한 지 5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시가행진이 계획돼 있는데, 평화 시위 기조가 유지될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1997년 7월 1일 홍콩 반환은 덩샤오핑(鄧小平)이 일국양제, 항인치항(港人治港·홍콩은 홍콩인이 다스린다), 고도자치(高度自治)라는 3대 원칙을 50년간 보장하겠다고 확약하면서 이뤄졌다. 그 당시 조성됐던 국제질서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주도하는 미국 1극 체제로, 중국도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 노선을 추구하던 시절이다. 또, 그때만 하더라도 홍콩은 중국 경제개발을 위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서 잡아먹고 끝내선 안 될 존재였다.
그런데 중국이 어느 정도 힘을 길렀다고 판단하면서부터 ‘홍콩의 중국화(化)’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2014년 6월 10일 “홍콩 관할권은 중앙정부가 전면적으로 보유한다. 일국양제의 양제와 일국을 동등한 가치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양제는 일국에서 비롯된 것이다”라는 내용의 ‘홍콩특별행정구의 일국양제 실천’이란 백서가 나왔다. 덩샤오핑의 3대 약속은 휴지가 된 것이다. 이에 행정장관 선거 직선제를 요구하는 ‘우산 혁명’이 발발했으나, 강경 진압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다 범죄인 인도 법안을 계기로 항인치항을 요구하는 시위가 다시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이번 홍콩 사태의 근원이다.
결국 서로 다른 체제가 같은 국가에 공존할 수 없음이 다시 한 번 입증된 것이다. 일국양제는 과도기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으나 항구적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에서 노동당 간부들을 대상으로 “북한이 중국 입장이 되고 한국이 홍콩이 되어 한 나라 두 체제의 통일이 될 것”이라는 ‘김정은식 연방제 통일전략’을 교육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이번 홍콩 사태는 통일문제를 ‘우리민족끼리’ 식의 종족적 민족주의 시각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
또, 중국은 여전히 공산당 독재 체제라는 사실이 재확인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가 이식되면 중국이 민주화될 것이란 낭만적 사고가 유행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국공합작을 통해 중국 대륙을 지배한 중국 공산당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한국이 제2의 홍콩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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