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10.15 손진석 파리 특파원)
손진석 파리 특파원
리처드 그리넬 독일 주재 미국 대사는 '유럽에 상주하는 트럼프' 소리를 듣는다.
그는 "독일에 미군을 주둔시키기 위해 미국 납세자들이 낸 돈을 써야 하는 건 불쾌하다"고 말한다.
독일이 국방비 지출에 인색해서 미국이 홀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떠받치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다.
유럽 외교가에서는 미·독 관계가 트럼프 집권기에 악화되는 속도가 빨라졌을 뿐 이미 균열이 생긴 지 오래라는 진단이
나온다. 냉전(冷戰) 시대에는 미·독 관계가 끈끈했다. 함께 소련에 맞섰다. 특히 주독 미군이 양국 관계의 가교였다.
1980년대 중반 주독 미군은 25만명에 달했다. 하지만 독일 통일을 거치면서 지금은 3만5000명으로 줄었고,
이와 맞물려 미·독 관계도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주독 미군은 폴란드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폴란드는 백악관을 향해 "주독 미군을 폴란드로 재배치해주면 비용을 전액 부담하고 기지 이름을
'트럼프 기지'로 하겠다"며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미군의 경제적 가치를 높게 보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러시아의
서진(西進) 위협에 맞서 미국의 안보 우산으로 무장해 해외 자본이 안심하고 투자하게 만들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폴란드가 기업 유치하듯 미군을 모셔 가려고 하자 화들짝 놀란 독일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분위기다.
독일인들은 미군의 도움 없이 국토를 방어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미
군에 안보를 의존하면서 국방 예산을 GDP(국내총생산) 대비 1.2% 안팎만 쓰는 나라가 독일이다.
선진국 최저 수준이다. 국방비를 덜 쓰고 다른 분야에 투자를 늘릴 수 있었던 것이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다. 미군의 도움으로 경제성장을 이뤘다는 점에서 독일과 한국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요즘 세계인들은 미군이 있고 없는 차이를 눈으로 확인하는 중이다.
시리아에서 미군이 철수한다고 결정하자마자 터키군이 시리아 국경을 넘어 쿠르드족을 타격하는 장면을 보고 있다.
트럼프가 가까운 우방으로 꼽는 이스라엘에서도 언제 미국이 배신할지 모른다며 "칼은 우리 등 뒤에 있다"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독일도 국방 예산을 2024년까지 GDP의 2%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하며 미국의 마음을 사려고 애쓰고 있다.
각국이 미군의 위상을 실감하고 있지만 반대로 한국에서는 미군 철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트럼프가 한·미 연합 훈련을 "완전한 돈 낭비"라고 하고, 주한 미군 방위비도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현재 집권 세력은 별달리 긴장하지 않는 것 같다.
유럽 최대 국가이자 경제 규모 세계 4위 대국(大國)인 독일보다도 미군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하다.
한반도에서 미군이 떠난 후폭풍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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