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동양화가 말을 걸다]봄이 겨울에서 시작되듯 시작은 어려울수록 좋다-곽희 조춘도

바람아님 2014. 1. 10. 14:36
곽희 ‘조춘도’ 북송. 1072년. 비단에 색. 158.3×108.1㎝, 대북고궁박물원

    봄이다. 이렇게 추운 겨울인데 봄이라니. 그래도 봄이다. 2월 4일 입춘이 지났으니 봄은 파죽지세로 밀려올 것이다. 봄의 대대적인 ‘상륙작전’ 소식이 전해지면 서릿발같이 흙을 밀어내던 겨울 냉기도 힘없이 무너질 것이다. 철통 같은 냉전 체제가 무너진 들판에는 생명의 씨앗을 거느린 평화유지군이 점령할 것이다. 부드러운 햇살은 땅속에 감금된 새싹의 손을 잡고 지상으로 걸어 나올 것이고, 훈훈한 바람은 굳게 닫힌 꽃대문의 빗장을 열어 붉은 연정을 고백하게 할 것이다. 봄의 침략은 열망을 선동한다. 영세한 삶을 들쑤셔 꽃등을 켜게 한다. 맹목적으로 생명을 향해 질주하게 만든다. 사멸해야 하는 계절의 숙명이 생명 속에서 부활하는 역설. 쓰러지면서 화해하고 멸실되면서 탄생하는 초봄의 살풍경은 그래서 전혀 살풍경하지 않다. 오히려 축제의 마당이다. 열락의 화합을 약속하는 정혼(精魂)의 현장이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여전히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싸늘한 겨울이다. 꽃샘 추위도 한바탕 깽판 치듯 휩쓸고 갈 것이다. 그래 봤자다. 봄은 대세다. 계시처럼, 예언처럼 태연자약하게 걸어오는 봄의 진군을 허물어지는 겨울이 무슨 수로 당해낼 것인가.
   
   
   황량한 북방산수가 숨을 쉰다
   
   중국 산수화를 대표하는 곽희(郭熙·약 1001~1090년)의 ‘조춘도(早春圖)’를 보자. ‘이른 봄’을 그린 작품인데 말이 ‘조춘’이지 아직은 겨울 추위가 삼엄한 ‘만동(晩冬)’이다. 그런데 겨울이라 하기에는 뭔가 이상하다. 얼음처럼 단단하던 겨울 산이 헐겁고 느슨하다. 지친 겨울이 새로 도착한 봄의 등에 기대 젖은 몸을 말리는 것 같다. 스스로 독하게 사느라 냉정하게 얼어있어야 했던 시간을 해동시킨다. 봄은 자신 앞에서 속수무책 무너지는 노췌한 겨울을 얼른 품에 안아 위로한다. 급히 달려오느라 발그스레해진 두 팔을 벌려 허물어져가는 겨울을 껴안는다. 그 모습이 무던하다.
   
   ‘조춘도’는 꿈틀거리는 황토산을 화면 가득 배치했다. 인간이 미처 봄을 실감하지 못하는 사이 자연이 어떻게 우주의 질서를 감지해내고 받아들이는가를 보여주려함이다. 아직 겨울 추위를 떨쳐버리지 못한 나무들이 댕돌 같은 가풀막에 뿌리를 박은 채 봄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해조묘(蟹爪描·나무의 잔가지를 게의 발톱처럼 날카롭게 그리는 기법)로 표현된 두 그루 소나무는 벌써 물기를 머금었다. 뿌리를 통해 땅속의 기운을 맹렬하게 빨아들이는 중이다. 고원(高遠)·심원(深遠)·평원(平遠)의 다양한 시점(視點)의 혼합도 생동감을 더해준다. 중앙에 그려진 산이 상승하는 기운이라면 왼쪽에 펼쳐진 평원은 아득한 깊이감이다. 변화무쌍한 화면 경영이다. 덩어리진 황토산에는 세밀한 필선과 섬세한 질감 묘사로 자연의 위대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단순한 흙산이 펄떡거리는 허파처럼 숨을 쉰다. 먹색의 농담을 적절하게 조절하여 푸석한 산에 초봄의 생명력을 움트게 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안개와 햇빛에 의한 조광 효과는 강한 양감을 되살려 오랜 잠에 빠진 봄산을 흔들어 깨운다.
   
   
   거대한 자연 앞에 나약한 인간
   
   북송(北宋)의 화원이었던 곽희는 이성(李成·919~967년)과 함께 웅장하고 거대한 북방의 산수를 특색 있게 그려 이곽파(李郭派) 산수화풍을 수립하였다. 이성의 화풍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아 곽희의 이름만을 따서 곽희파 화풍(郭熙派 畵風)이라고도 부른다. 북방산수화에서는 산이 중심이다. 화면 중앙에 천험(天險)한 산이 위용을 자랑하며 높이 솟아 있다. 폭포는 거대한 산수에 묻혀 실처럼 가늘게 그려진다. 압도하듯 웅장한 대관산수화(大觀山水畵) 속에서 거대한 자연과 왜소한 인간이 대조적으로 표현된다. 천야만야(千耶萬耶)한 거대한 자연에 비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간의 모습은 개미새끼처럼 작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겨우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존재감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이곽파 화풍은 송(宋)나라가 금나라에 쫓겨 회하(淮河) 이남으로 남하할 때까지 북송을 상징하는 화풍이었다. 남송(南宋)의 조정에서는 마원(馬遠)과 하규(夏珪)에 의해 인물이 부각되는 근경 중심의 산수화가 유행하게 되었다. 이것을 마하파 화풍(馬夏派 畵風)이라 부른다. 전혀 다른 두 화풍의 전개는 산수를 그리는 화가에게 그를 둘러싼 자연환경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그렇지만 남송대 이후 이곽파 화풍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전통이란 하루아침에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법이다. 금(金)과 원(元)대에도 여러 화가들이 이곽파 화풍을 따라 그렸다. 황량한 겨울 산, 언덕 위에 솟은 몇 그루의 소나무, 해조묘법과 운두준법(雲頭皴法·산이 풍화작용으로 침식되어 마치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처럼 그리는 기법) 등은 후대 이곽파 화풍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전용되었다. 이곽파 화풍은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화가 안견(安堅)의 작품세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조선의 화가가 중국의 곽희파 화풍에서 무엇을 취하고 버렸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 작품이다.
   
   
   아직도 봄이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거든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림 오른쪽 하단을 보면 뱃사공이 손님을 실은 배를 물가에 대려 하고 있다. 그런데 상류에서 쏟아지는 폭포물이 경쾌한 소리를 내고 흘러내린다. 곽희는 산수화 제작에 관한 이론서인 ‘임천고치(林泉高致)’에서 물을 ‘천지의 피’에 해당한다고 역설했다. ‘피(물)는 두루 흐르되 엉기거나 막히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얼음 녹은 물을 보니 엉기거나 막혀 동맥경화에 걸릴 것 같지는 않다. 생동하는 봄이 피를 두루 잘 흐르게 할 것이다.
   
   눈길을 왼쪽 하단으로 돌려보자. 강가에는 사람들이 배를 타기 위해 서 있다. 강이 얼어 배가 나아갈 수 없는 첩첩산중이고 보면 봄은 물의 결박을 푸는 것에서부터 바뀐 세상을 보여준다. 아무리 완강하던 겨울도 물때썰때를 안다. 물줄기를 따라 상류로 올라가 보면 바뀐 세상 속으로 나귀를 끌고 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인물들이 개미처럼 작게 그려졌다. 거대한 자연 앞에 선 나약한 인간을 의미한다. 또한 날이 풀려 완연한 봄이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터전을 왕래할 것을 예고한다. 인간은 비록 개미처럼 작고 나약한 존재이지만 지혜롭게 자연을 경영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곽희가 산수화를 통해 감상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바로 자연 속에 있는 듯 천품을 수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사계절의 시작은 봄이 아니라 겨울이다. 한 해의 시작이 녹음 무성한 8월이 아니라 1월 추위 속에서 시작되는 의미가 무엇일까. 비본질적인 허울은 전부 벗어버리고 열매, 씨앗 같은 본질적인 것만으로 한 해를 시작하라는 뜻이 아닐까. 사업도 경기가 좋을 때 무리하게 확장하면 경기가 나빠졌을 때를 견디지 못한다. 잎사귀 같은 겉치레를 전부 떨어뜨린 상태에서 투명하게 시작했을 때 새싹이 돋고 열매를 거두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불황을 견딜 수 있다.
   
   시작이 어려우면 일하는 도중 아무리 마음이 기우뚱거리고 출렁거려도 꿈쩍하지 않는 초심(初心)을 이어갈 수 있다. 일하면서 만나게 되는 윤기 없는 마음과 부딪혀 사무치게 외로워도 부챗살을 움직이는 사북처럼 흔들리지 않게 된다. 시작이 어렵다고 두려워하지 말라. 시작은 어려울수록 좋다. 어려움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조정육
   
  홍익대 한국회화사 석사, 동국대 박사 수료. 성신여대 대학원, 동국대 대학원 강의.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거침없는 그리움’ ‘꿈에 본 복숭아꽃 비바람에 떨어져’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우리나라 대표 그림’ ‘그림공부, 사람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