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침공해주면 고맙겠습니다"
머니투데이 2019.11.12. 03:05
인류 역사상 외교적으로 가장 무능한 지도자들을 꼽으라면 이집트의 마지막 왕이었던 파루크를 빼놓을 수 없다. 윈스턴 처칠 당시 영국 총리의 시계를 슬쩍한 건 그의 다른 '실수'들에 비하면 애교에 가깝다. (처칠은 정색하고 시계를 돌려달라고 했다.)
이집트는 1922년 영국에서 명목상 독립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영국은 이집트에 대규모 주둔 병력을 그대로 남겨뒀다. 이집트의 외교·국방·교통도 영국이 모조리 틀어쥐고 있었다. 사실상 '준(準) 식민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파루크 왕은 이집트 국민과 영국 양쪽에서 욕을 먹었다. 국민들은 왕이 영국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다고 비난했고, 영국은 그가 꼭두각시 노릇을 제대로 안 한다고 불만이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파루크 왕은 세계사에 길이 남을 어처구니 없는 만행을 저지른다. 독일 나치 정권에 호감을 느낀 그는 아돌프 히틀러에게 자기 나라를 침공해주면 고맙겠다는 정중한 편지를 보냈다. 독일군이 영국군을 쫓아내줄 거란 기대였다.
독일과 이탈리아 등 추축국은 그의 부탁대로 정말 이집트를 침공한다. 여기서 파루크 왕은 또 한번 어이없는 행태를 보인다. 독일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 알렉산드리아 전체가 암전 상태일 때 그는 궁궐을 환하게 밝힌 불을 끄지 못하게 했다.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파루크 왕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추축국에 맞서 참전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미 전세가 기운 터라 전승국으로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했다. 파루크 왕의 실정에 질린 군부는 1952년 그를 폐위시켰다. 이후 이탈리아를 떠돌던 그는 1965년 로마의 한 레스토랑에서 식사 후 시가를 피우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심리학에 '더닝 크루거 효과'라는 게 있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가 '무능에 대한 무지'란 논문에서 소개한 인지적 오류다. 어떤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해 선택이 잘못됐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무엇이 부족한지 모르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외교에 무지한 지도자가 왜 그토록 잘못된 외교 노선을 고집하는지, 그리고 그런 지도자가 왜 위험한지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만약 그 지도자가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철군을 강행했다. 이역만리의 미군들을 고향으로 데려오겠다는 명분이었다. 그 결과, 터키는 시리아 북부 쿠르드족 소탕에 나섰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러시아가 터키와 시리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 보스포루스 해협을 낀 터키는 러시아 흑해함대의 진출을 막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핵심 회원국이다. 그런 터키가 NATO의 적국 러시아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군사정보 유출을 우려한 NATO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미 러시아제 미사일까지 구매한 터다.
만약 터키가 러시아와 손을 잡고 흑해함대에 길을 열어준다면? 자신의 결정 때문에 러시아 함대가 지중해를 휘젓고 다니는 사태까지 걱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트럼프 대통령은 충분히 생각했을까.
과거사 문제 때문에 동맹국을 사실상 적국으로 돌린 아베 신조도 다를 바 없다. 그렇다고 상대방의 오판에 단견으로 맞서는 것 역시 현명한 지도자가 갈 길은 아니다. 정치적 이유로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안보를 희생한 선택을 역사는 뭐라고 평가할까. 지도자의 섣부른 판단보다 더욱 위험한 건 선택을 되돌리지 않는 고집이다.
주한미군 철수? 겁낼 필요 없는 3가지 이유
머니투데이 2019.12.11. 03:05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배적 지위를 인정한다." 1905년 7월29일 미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와 일본 총리 가쓰라 다로가 맺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한 조항이다. 이틀 뒤 시어도어 루즈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이 합의를 승인한다. 미국의 태평양 진출을 주도한 팽창주의자 루즈벨트조차도 한반도엔 별 관심이 없었다.
1950년 1월 미 국무장관 딘 애치슨이 선언한 미국의 전진 방위선, 이른바 '애치슨 라인'에도 일본까지만 포함될 뿐 한반도는 빠져 있었다. 이때까지 한반도는 미국의 관심 밖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이후 60여년간 미군은 한반도에 주둔하며 이를 중국과 러시아의 확장을 막는 최전방 전진기지로 삼아왔다.
그런 미국이 다시 한반도를 떠날 수 있다고 한다. 의회와 행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3일 런던에서 주한미군에 대한 질문을 받은 그는 "난 주둔이든 철수든 어느 쪽으로든 갈 수 있다"고 했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끌어내기 위한 단순한 엄포가 아니다. 왜 수십억달러를 들여 '부자 나라'를 지켜줘야 하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돈보다 중요한 동맹의 가치를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워싱턴 정가에서 잔뼈가 굵은 김동석 미국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미 의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할 수 있다고 보고, 이를 막을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2020년 국방수권법이 의회를 통과해도 안심할 수 없다. 주한미군을 2만8500명 이하로 감축하는 데 예산을 쓰지 못하도록 한 내용이 담겼지만, 예외조항이 있다. △국가안보 이익에 부합하고 △역내 동맹국들의 안보를 상당히 해치지 않으며 △한국·일본과 적절한 논의를 거쳤다고 국방장관이 의회에 입증하면 주한미군을 그 이하로 줄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다면 달라질까.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은 앞으로 자국 일에만 신경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 국민이 2013년 이후 50%를 넘는다. 트럼프가 좋아서 난생 처음 투표장에 나왔다는 500만명의 유권자가 이런 이들이다. 앞으로 어떤 미국 대통령도 '고립주의'와 '미국 우선주의'로 대표되는 포퓰리즘 정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 정치 지형상 장기적으로 주한미군은 감축되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감축과 완전 철수는 다른 문제다. 주한미군 수를 아무리 줄여도 최소한의 규모만 남는다면 미국의 확장 억제력, '핵우산'은 유지된다. 미국이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유는 3가지다.
첫째, 미국 입장에서 금전적으로 손해다. 한반도에서 철수한 미군을 일본이나 괌에 주둔시키면 더 많은 비용이 든다. 그렇다고 이들을 해산시키는 건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치명적이다.
둘째, 미국 입장에선 앞으로 남중국해 등지에서 중국과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수록 한반도내 거점의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 한국의 공군기지들은 일본 오키나와나 요코타 공군기자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베이징과 가깝다.
마지막으로 주한미군 철수는 자칫 일본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미국이 동북아에서 발을 뺄지 모른다는 일본의 공포는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본과 중국의 밀착을 불러올 수 있다.
방위비 협상에서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 카드로 위협해도 겁 먹을 필요 없다. 어차피 그들은 못 떠난다. 적어도 북한의 비핵화 이전엔 말이다. 자체 핵무장에 따른 동북아 '핵 도미노'를 미국은 감당할 수 없다. 블러핑(허풍)엔 블러핑으로 맞설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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