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朝鮮칼럼 The Column] '온갖 헛발질에도 야당 복으로 압승한 영국 여당' 남 얘기인가

바람아님 2019. 12. 16. 08:10

(조선일보 2019.12.16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소수의 열성적 지지자만 바라보는 정치로는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어
내년 총선서 한국당 지면 4연속 패배… 英 노동당처럼 쓸려나갈 것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난 주말의 영국 총선 결과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선거 결과 보수당이 364석을 차지해 압승을 거뒀다.

이 선거 결과로 영국은 브렉시트를 둘러싼 그간의 정치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주목한 것은 노동당이었다.

이 선거에서 노동당은 203석으로 1935년 이래 가장 적은 의석을 얻었다. 노동당은 2010년

보수당에 권력을 넘겨준 이후 2015년, 2017년, 그리고 이번 선거까지 네 차례 연속해서 패배했다.

2015년 이후 노동당을 이끌고 있는 리더는 제러미 코빈이다.

영국의 여론 회사 유고브(YouGov)에 따르면, 지지자들이 보는 코빈은 '존경스럽고, 자신감 있고, 공감력이 있고,

긍정적이고 정직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는 리더의 정당이 선거에서 참패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조사 대상이 된 전체 응답자 중 코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비율은 21%에 그쳤고 61%가 부정적이었다.

이처럼 코빈이 이끈 노동당은 충성스럽고 열성적인, 그러나 이념적으로 강경한 20~30%가량의 지지층에 묶여 있었다.

코빈은 실제로 노동당 내에서도 강성 좌파를 대표한다.

이번 총선에서도 노동당은 철도, 우편, 수도, 에너지 등에 대한 국유화, 영국 내 다국적 기업에 대한 증세,

최상위 5% 소득자에 대한 증세, 대학 등록금 폐지 등 강경 좌파의 색채를 띤 공약을 내걸었다.

이념적으로 경도된 소수의 지지자는 기뻤을지 모르지만 집권에 필요한 다수의 공감을 얻기에는 비현실적 공약이 많았다.

이번 보수당의 압승은 보리스 존슨 총리가 잘해서라기보다 노동당이 마땅한 대안이 되지 못한 야당 정치의 실패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런 답답한 야당 정치의 모습은 한국에서도 똑같이 찾아볼 수 있다. 문

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는 정파나 이념의 차이를 떠나 전반적으로 부정적이다. 경

제는 활력을 잃어가고 외교는 불안하고 사회적 갈등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다. 딱히 뭐 하나 속 시원한 게 없다.

그렇지만 여전히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높다.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거의 50%에 육박하며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율 역시 40%대에 달한다.

이에 비해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20% 정도에 머물러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불만이 높은 상황에서도 야당의 지지율이 이렇게 낮게 정체되어 있는 건

황교안 체제의 미숙한 정치력 때문이다.


황 대표가 정치를 시작한 이래 보여준 것은 투사의 모습이다.

황 대표에 대해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장면은 삭발이나 단식, 아니면 길거리 정치일 것이다.

20~30년 동안이나 정치를 했더라도 대다수 정치인이 한 번도 하지 않았을 삭발이나 단식과 같은 극단적 행동을

몇 달 사이에 다 보여주었다. 그만큼 문재인 정부에 맞서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삭발이나 단식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 자유한국당이나 황 대표에 대한 지지도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그런 투쟁이 자유한국당의 열성적 지지자가 아니라면 중도적 유권자들에게조차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쯤에서 다시 영국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보수당이 오랜 시간 동안 세월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경쟁력을 갖고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권력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불가피한 세상의 급격한 변화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질서 있게 관리해 나가려면

보수 세력이 권력을 잡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에 대한 신뢰가 중요했고 당 노선이나 체질의 변화를 통해

다수 유권자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보수 정치에서 이런 모습을 찾긴 힘들다.

108석이나 가진 거대 야당에 유권자들이 기대하는 건 노조나 시민단체, 일부 종교 세력처럼 길거리로 나가 시위하고

구호를 외치라는 게 아니다.

제도의 정치 속에서 대안 세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정치력을 야당이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다면 내년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의 참패는 예정되어 있다.

소수의 열성적 지지자만을 바라보는 정치로는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영국 총선 결과를 두고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노동당이 영국 선거 역사상 '가장 엄청난 규모로 쓸려나가게 될

(the most seismic wipeout)' 지경에 처했다고 했다.

자유한국당은 2016년 국회의원 선거, 2017년 대통령 선거, 2018년 지방선거에서 세 차례 잇달아 패배했다.

내년 총선에서 또다시 패배한다면 자유한국당도 영국 노동당처럼 쓸려나갈 처지에 놓이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