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영하던 한(漢)나라가 쇠퇴하게 된 결정적 시기는 원제(元帝) 때다. 유학(儒學)을 좋아했던 그는 스승 소망지(蕭望之)를 아꼈음에도 환관 석현(石顯)의 농간으로부터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사실 석현은 임금 자리를 노리는 차원의 권간(權奸)은 아니었다. 그저 원제의 총애나 받고자 하는 것이 전부인 그저 그런 간신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소망지는 올곧은 대신이었다. 석현이 동료 환관 홍공(弘恭)과 손잡고 원제의 뜻에만 영합해 조정 일을 좌우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석현과 홍공을 멀리해야 한다고 원제에게 말했다.
석현은 간신들의 고전적 수법을 써서 소망지에게 역공을 가했다. 한편으로는 소망지가 주감(周堪)·유경생(劉更生) 등과 가까이하며 붕당을 짓는다고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권력을 독점하려 한다고 했다. 실은 자신들이 그 짓을 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그러면서 "저들을 정위(廷尉·오늘날 검찰)에 내려보내소서"라고 했다. 어린 데다가 어리석은 원제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리하라고 했다. 얼마 후 원제가 주감과 유경생을 찾았다. 이에 석현은 "그들은 감옥에 있습니다"라고 했다. 깜짝 놀란 원제는 "그냥 정위가 물어보는 것 아니었느냐?"고 하면서 석현과 홍공을 꾸짖고는 그들을 풀어주라고 했다. 두 사람은 원제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했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었다는 점이다. 눈 밝은 군주[明主]라면 큰 벌을 내려야 했다. 그 뒤 결국 소망지는 두 간신의 흉계에 걸려들어 자기 집을 기병들이 포위하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했다. 두 사람은 소망지가 감옥에 잡혀가느니 죽음을 택하리라는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사실상 원제가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송나라 학자 진덕수(眞德秀)는 이 일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임금 된 자가 굳세고 밝은 임금다움은 없이 아녀자와 같은 작은 은혜[婦人之仁]에 얽매인다면 간신들에게 놀아나지 않는 경우가 드물 것이다."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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