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1.08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광해군처럼 중간은 넘는 자질로 나름대로 잘해보려 하면서도, 결국은 간신의 농간에 놀아나다가
권좌에서 굴러 떨어진 사례는 간신술(奸臣術)의 위험성을 단번에 보여준다.
간신들은 일반적으로 주군의 속뜻을 살피는 데 탁월하다.
그것을 미지(微旨)라고도 하고 의중(意中)이라고도 하고 은미(隱微)라고도 한다.
임금과 간신의 만남은 바로 이 지점이기 때문에 임금이 강명(剛明)하여 뜻을 굳게 하고 눈 밝게 사람을 알아볼 경우
간신은 애당초 생겨날 수가 없다.
광해군과 간신 이이첨(李爾瞻)의 만남이 전형적이다.
이이첨은 선조가 말년에 영창대군에게 왕위를 전하려 하자 정인홍과 함께 목숨을 걸고 광해군이 뒤를 이어야 한다고
했다가 먼 곳으로 유배를 가게 됐는데, 그 직후 선조가 세상을 떠나고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탄탄대로를 걷게 됐다.
직선적 성품의 정인홍과 달리 이이첨은 일마다 광해군의 미지를 알아내 비위를 맞췄다.
그러나 여기에만 그쳤다면 3류 아첨꾼에 머물렀겠지만 이이첨은 광해군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약점,
즉 정통성 불안 심리를 흔드는 데 탁월했다.
의심 많은 군주는 간신의 밥이 되기 마련이다.
광해군이 친형 임해군을 죽이고 동생 영창대군 또한 죽이고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키는 데 이이첨을 빼고서는
설명이 안 된다. 광해군이 온건책을 낼 때마다 초강경책으로 맞서 끝까지 관철할 수 있었던 것도
실은 광해군의 불안감을 교묘하게 조장했기 때문이다.
조정에 이이첨이 있는 것은 알아도 임금이 있는 것은 모른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그러나 소북 세력은 물론이고 서인과 남인을 모두 적으로 돌린 채 대북 세상을 만들었다고 큰소리쳤던
대간(大奸) 이이첨은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아들들과 함께 비명횡사(非命橫死)했다.
정인홍은 그나마 강직함으로 인해 혹평은 면했지만, 이이첨은 지금도 대간이라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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