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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 시인의 복수[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22>

바람아님 2020. 1. 9. 08:17
동아일보 2020.01.08. 03:03
자기도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일회성이어서 허공으로 증발할 수 있지만 활자화된 말은 계속 상처를 준다. 글이 위험한 이유다. 영국 시인 테드 휴스의 ‘농학교(聾學校)’는 그러한 시다.


‘농학교’는 청각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다룬 시다. 시인은 그들을 이렇게 묘사한다. ‘귀먹은 아이들은 원숭이처럼 민첩하고 물고기처럼 겁이 많고 갑작스러웠다./그들의 얼굴은 작은 동물들의 얼굴처럼/기민하고 단순했다.’ 그들을 동물에 빗댄 것이다. 비하할 의도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특성을 묘사하기 위해서였겠지만 문제는 그러한 비유가 그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만든다는 것이다. 의도가 없었다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건 아니다. 제대로 표현할 자신이 없으면 말보다 침묵을 택하는 게 더 좋은 이유다.


청각장애를 갖고 태어난 혼혈 시인 레이먼드 앤트로버스는 기발한 방식으로 휴스에게 복수한다. 그는 “테드 휴스의 ‘농학교’”라는 제목의 시에서 휴스의 시 전문을 인용한 다음에 선생이 학생의 어설픈 글을 보고 그러하듯 펜으로 쭉쭉 그어 다 지워 버린다. 그게 전부다. 시인은 그것으로 성에 차지 않았는지 “미시시피강 옆에서 ‘농학교’를 읽은 후”라는 시를 통해 공세를 이어간다. 그는 ‘단순하고’ ‘소리에 대한 미세한 떨림의 아우라와 소리에 대한 반응이 부족한’ 것은 청각장애인이 아니라 휴스라고 말한다. 미시시피 강물 같은 ‘우리’에 대해 ‘당신’이 대체 뭘 알기에 여우원숭이에 비유하느냐는 거다.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는 거다. 호된 복수다. 시적인 복수.


그런데 고인이 된 휴스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테드 휴스 상’이 2019년, 앤트로버스에게 돌아갔다. 그는 휴스를 패러디한 두 편의 시가 포함된, 상처에 관한 29편의 시로 이뤄진 시집 ‘인내’로 그 상을 수상했다. 그런다고 휴스의 시에서 받은 상처가 없던 일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얼마나 아름다운 치유의 시작인가.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