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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의 시사철] 英 브렉시트·韓 밀실야합… 안돼요, 2020년엔 '앵콜 요청 금지'

바람아님 2020. 1. 15. 12:23

(조선일보 2019.12.28 노정태 철학에세이스트)

[아무튼, 주말- 노정태의 시사철]
헤라클레이토스와 만물유전
      
노정태 철학엥세이스트
"안 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 모두가 그렇게 바라고 있다 해도."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히트곡 '앵콜요청금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은 탈퇴한 보컬 계피의 담담하고 아련한 목소리.
지나간 사랑을 붙들고 싶어 하는 사람, 그걸 돌이킬 수는 없다고 선을 긋는 사람의 엇갈리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더 이상 날 비참하게 하지 말아요. 잡는 척이라면은, 여기까지만."

살다 보면 그런 때가 있게 마련이다.
어떤 변화가 있고, 그 방향을 되돌릴 수 없는 순간, 말하자면 비가역적인 이행의 시기가 있다.
방금 인용한 노랫말처럼 그런 변화는 두 사람이 만나 함께하는 사이가 되었다가,
모종의 이유로 각자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는 일, 즉 연애와 이별에서 가장 도드라진다.

생각해보면 연애만 그런 건 아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 인생 대부분의 시간이 그렇다.
학교나 직장 등 큰 조직에 속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오늘과 내일은 같은 하루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의 일상은 실은 모두 다른 나날들로 이루어져 있고,
평화로운 듯 보여도 그 속에는 무수한 감정과 갈등이 포개져 있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방금 나온 마지막 문장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기분이 들 것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남긴 말이기 때문이다.
직접 쓴 책이 전해지지 않는 관계로 우리는 그의 사상을 후대인들이 인용한 내용을 통해 파악할 수밖에 없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모두 비판적으로 인용한 덕분에 잘 알려져 있다.

헤라클레이토스와 만물유전
일러스트= 안병현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말,
즉 만물유전(萬物流轉)의 원리 1차원적으로 내뱉는 사람은 곧장 자가당착에 빠지고 만다.
본인이 하는 말 역시 '변치 않는 진리'는 아닐 테고, 하나마나 한 소리를 하는 셈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모두 이런 방식으로 헤라클레이토스를 비판했지만 이건 공정하지 못한 논법이다.
헤라클레이토스 사상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주장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사실일 뿐이다.
핵심은 '모든 것이 변한다'라는 추상적이며 철학적인 원리를 세계의 근본 질서로서, 즉 로고스로 제시했다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은 늘 변한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다. 즉 변화한다.
동시에 생존을 위해 경쟁한다. 동물만이 아니다.
식물들 또한 더 많은 햇볕을 쬐기 위해, 더 많은 씨앗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독한 화학물질을 내뿜고 동물을 유혹하고
내쫓으며 투쟁한다. 이렇듯 자연은 싸움과 죽음으로 가득 차 있지만, 우리는 한 걸음 물러나 그 속의 조화와 생명을
바라볼 수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용한 바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대립하는 것은 한곳에 모이고, 불화하는 것들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모든 것은 투쟁에 의해 생겨난다."
대립과 소멸을 통해 합일과 생성에 이르는 철학적 원리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동양 철학의 전통에 익숙한 우리는 오히려 더 쉽게 이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만해 한용운이 남긴 유명한 시구처럼 말이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성찰을 통해 최근 영국 보수당이 총선에서 거둔 압도적인 승리를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오가고 있지만 요점은 분명하다.
영국인들은 이미 2016년에 국민투표로 유럽연합 탈퇴, 즉 브렉시트를 결정했다.
그러자 영국 정치권은 갖은 이유를 들고 법적 곡예를 동원해 그 시행을 막고자 했다.
그런 식으로 무려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총리가 두 번 바뀌었지만 야당인 노동당은 비판의 목소리만 높일 뿐, 자신들이 여당이 되었을 때 뭘 어쩌겠다는 것인지
제대로 된 청사진 하나 보여주지 못했다.

총리가 된 보수당의 보리스 존슨은 'Get Brexit Done', 즉 '브렉시트를 끝내라'라는 간결한 선거 구호를 내걸었다.
그렇게 이번 영국 총선은 보수당이 아니라 브렉시트로 인해 마비되어버린
영국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되고 말았다.
기존 국민투표를 넘어서는 결과가 나온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국인들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그지 않기로 결정했다.

정치란 사회의 갈등을 드러내고 그 해법을 찾는 것이다.
즉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생성을 위한 투쟁'과도 같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주판을 튕기며 '석패율제'니 '연동형 비례제' 따위 복잡한 선거 제도를
판돈으로 정치 거래에 혈안이 된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영국도 그랬다.
스스로가 동의해서 치른 국민투표 결과를 받아들이기 싫으니 국민이 넌더리를 낼 때까지
'아티클 50'이니 '백스톱'같은 난해한 조항 타령을 해댔다. 그 결과는 우리가 목격한 바와 같다.
정치인들 자신만을 위한 '상생'은 '야합'일 뿐이다.
생성을 위한 소멸, 화합을 위한 투쟁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그런 정치를, 우리는 과연 경험할 수 있을까.

2020년 새해, 새로운 10년의 시작을 우리는 앞두고 있다. 지난 10년이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새날은 그냥 오지 않는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과거와의 단절이, 그 단절을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
병아리가 태어나려면 자신을 싸고 있는 알을 쪼아야 하고,
번데기가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려면 고치를 찢어내고 날개를 햇볕에 말려야 하며, 꽃이 피려면 꽃망울을 터뜨려야 한다.

그 모든 싸움 중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화하고 서로 투쟁하지만 만물은 하나다.
그 역동적인 순환이 바로 세계의 기본 원리인 로고스라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다.
즉, 사랑은 시작되고 끝나지만, 사랑은 영원하다.
'앵콜요청금지'는 사랑의 종말에 대한 노래지만, 바로 그렇기에 사랑의 시작에 대한 노래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
강물은 흐르고, 나도 당신도 이전과 똑같은 사람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강을 건너는 것뿐이다. 2020년, 우리 모두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