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中國消息

<시론>김정은이 文대통령 얕보는 진짜 이유

바람아님 2020. 1. 16. 09:50
문화일보 2020.01.15. 11:40



文 정부에서 한·미 3차례 위기
제재 무시, 남북경협 추진하고
한·일 지소미아 파기도 감행

김정은 방한 재타진 北서 무시
안보실·외교부 내분 정리하고
비건 ‘대행’과 관계 강화해야


문재인 정부 들어 한·미 관계에 심각한 금이 갈 만한 결정적 위기 상황이 세 차례 있었다.

첫 번째는 2018년 7월이었다.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에 고무된 청와대는 유엔·미국 제재와 관계없이 남북 경협을 밀어붙이고 싶어 했다. 정부 고위 인사가 워싱턴을 방문해 입장을 타진했다. 미 당국자들은 말이 없었고, 며칠 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을 통해 반응했다. ‘한국 업체 북한 석탄 밀반입’ ‘문재인 정부 알고도 묵인한 듯’. 문 정부는 일단 뜻을 접었다.


두 번째 위기는 지난해 11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연장 문제였다. 문 대통령은 야당 시절부터 지소미아에 반대해왔다. 미국 국무·국방장관과 합참의장 등 고위 인사가 줄줄이 방한했고 미 의회의 경고도 나왔다. 문 대통령의 결행을 중단시킨 것은 실무 차원의 경고였다고 한다. 자동차 수입 관세 25%, 북 석탄 수입 관련 업체와 금융기관 제재 가능성 등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미측 메시지를 청와대에 전달했던 당국자는 사면초가에 빠졌다고 한다.


세 번째 위기는 지금 한창 진행 중이다.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방한을 재요청했고, 기자회견에서 제재 해제를 언급했다. 청와대는 미국 때문에 남북 관계 개선이 지연된다는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 말 10·4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졌지만, 이명박 정권에서 합의 사항들이 백지화된 전례 때문에 마음이 급한 것 같다. 특히, 2005년 6자회담의 9·19 합의가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 계좌 동결 문제 때문에 1년 반 정도 이행되지 않은 것을 패착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세 번째 위기가 더 우려되는 것은 단순히 남북 관계 차원이 아니라 4월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 고려가 포함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오는 3월에 김정은이 서울 또는 제주도를 방문하거나, 올해 안에 오겠다는 약속을 구체적으로 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은 총선 대승을 기대할 것이다. 2018년 미·북 싱가포르 정상회담 다음 날 치러진 6·13 지방선거에서 전대미문의 대승을 거둔 기억을 어떻게 잊겠는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김정은 생일 축하 인사를 대신 전달하는 희한한 이벤트를 벌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문 정권의 세 번째 시도는 북한이 앞장서 막는 것 같다. 김계관 외무성 고문이 곧바로 담화를 통해 “주제넘게 설레발 치고 있다”면서 “바보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자중하라”고 힐난했다. 트럼프가 정 실장을 바보로 만든 것인지, 정 실장이 트럼프의 뜻을 과장·왜곡해 ‘플레이’한 것인지는 나중에 드러날 것이다.


북한이 왜 문 정권과의 거래를 끊으려 하는 것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일단 문 대통령을 믿기 어려워졌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 만났을 때 개성공단 얘기가 나오자 관계 장관을 자리로 불러 각별히 챙기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개성공단도, 금강산 관광도 재개되지 않고 있다. 하노이 미·북 2차 회담을 앞두고 미국의 입장을 잘못 전해줬다는 생각도 할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최고 존엄’을 욕보인 것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 평양 당국은 진보 정권의 능력을 불신하게 됐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 3대에 걸쳐 여러 합의를 했지만 결국 지켜진 게 없다. 진보 정권은 한국 내 보수 세력을 이끌어갈 정치력도, 동맹인 미국을 설득할 외교력도 부족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으로서는 차라리 남한 보수 세력과 협상하는 것이 합의 이행을 담보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문 정권이 아무리 기다려도 4월 총선에 북풍(北風)은 쉽게 불지 않을 것이다. 더 시급한 과제가 있다. 내부적으로, 청와대 안보실의 정의용 실장·김현종 2차장·최종건 평화기획비서관, 그리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 사이에 벌어지는 낯뜨거운 신경전부터 정리해야 한다. 둘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을 챙겨야 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상원의원 출마를 위해 떠날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고 한다. 워싱턴 기류로 볼 때 후임 임명에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비건이 장관직을 대행할 수도 있는 상황이란 것. 그러나 문 정부는 비건을 충분히 예우하지 않는다는 것이 워싱턴 외교소식통의 지적이다. 선거의 해, 정치 싸움 때문에 외교·안보는 계속 뒷전이거나 왜곡될 것이다. 우리의 운명이 다른 나라에 맡겨질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