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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중의 세상진찰] 바이러스는 직항편을 타고 퍼진다

바람아님 2020. 2. 7. 10:36

(조선일보 2020.02.07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국제선 비행 접근도 높은 나라서 중국·홍콩발 사스 환자 다 나와
교역 규모, 유학생·교포 감안하면 폐렴 번지는 곳 직항편 중단해야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전 세계를 강타했던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판박이가 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는 사스처럼 박쥐에서 시작돼 사람에게 넘어온 변종 바이러스다.

침방울에 의한 비말 감염인 것도 같다. 중국 밖으로 퍼지는 행태도 유사하다.

사스는 2002년 11월 중국 남부 광둥성에서 시작해 9개월 동안 8273명을 감염시켰다.

중국 밖 25개국에서 감염자 2905명이 나왔다. 신종 코로나는 한 달 만에 24개국에 감염자 230여명을 냈다.

사스 사태가 끝나고 전파 경로를 분석하는데, 지리학자와 사회학자들도 뛰어들었다.

미국 위스콘신-오시코시 지리학과 연구진은 국제선 비행기 운항편에 주목했다.

사스 전파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본 것이다.

이를 위해 발생지인 중국 남부와 홍콩과 연결된 국제선 직항편, 한 번 갈아탈 수 있는 도시 207곳을 조사했다.


연구팀은 비행기로 연결된 도시의 인구에 가중치를 줬다. 1인당 국민총생산액도 살폈다.

여행 빈도와 국제선 비행기를 탈 만한 경제적 여건을 본 것이다.

이 기준으로 뉴욕과 런던 간이 항공 접근성 최고 도시다.

종합 조사 결과 중국 남부 도시와 홍콩과 항공으로 제일 많이 연결된 나라는 미국이었다.

다음이 일본, 호주, 독일, 캐나다, 싱가포르 순이었다. 당시 한국은 13위였다.


연구팀은 해당 나라에 살고 있는 중국계 이민자 수도 봤다.

비행기를 타고 두 곳을 왕복 여행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캐나다에서 발생한 첫 사스 환자도 중국 남부가 고향인 이민 2세로, 광저우 친척을 방문하고 캐나다로 돌아와

사스로 확진됐었다. 교류 강도를 보기 위해 중국 내 설립된 회사와 투자 규모도 봤다.


국제선 비행 접근도가 높은 나라에서 중국과 홍콩발 사스 환자가 다 나왔다.

전염이 시작된 초기에는 국제선 직항편을 따라 환자가 퍼져 나갔다.

중국 교민 수, 투자액 규모 등과도 사스 발생이 얼추 맞아떨어졌다.

이에 바이러스는 직항 편수를 타고 퍼져 나간다는 말이 나왔다.

양측 간 직항편 규모가 전염병 전파 위험 지수인 셈이다. 참고로 비행기 내에서 전염은 매우 적었다.

비행기 안은 공조 시스템이 잘되어 있고 좌석이 모두 앞쪽을 향해 있어 비말 감염이 적게 일어난다.


사스 전파 행태를 중국발 신종 코로나와 우리나라와의 관계에 접목하면, 긴장감이 크게 느껴진다.

2003년 한국과 중국 간 항공 여행객 수는 사스 전후 평상시 한 달 평균 37만여명이었다.

지난해 한·중 항공 여행객 수는 한 달 평균 약 150만명이 된다. 그사이 4~5배 뛰었다.

우리나라 기업의 중국 투자 규모는 세계 3~4위다.

중국 유학생이 7만명이고, 양측을 오가는 중국 교포는 100만명쯤 된다.


현재 중국서 신종 코로나가 퍼지는 양상을 보면 무섭다.

진앙인 우한은 봉쇄됐지만 후베이 밖으로 감염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우한 남쪽으로 광둥성, 동쪽으로 저장성으로 퍼지고 있다. 이 지역들에는 확진자가 1000명에 이른다.

문제는 여기에 우리나라와 직항편이 많다는 점이다. 광둥성 광저우에는 한 달간 직항 편수가 389편 있다.

선전은 292편, 항저우 142편 있다.

바이러스는 직항편을 타고 오는데, 감염병이 번지는 곳에 직항편이 이렇게 많다.


신종 코로나를 막으려면, 해외 유입을 차단하고 지역사회 2차 감염을 줄여야 한다.

논란이 이는 중국인 입국 제한 조치는 차치하고 일단 신종 코로나가 번지는 곳의 직항편 운항을 잠정 중단해야 한다.

바이러스는 비행 속도로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