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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魚友야담] 인간의 본성은 암울한 시절에 드러난다

바람아님 2020. 3. 8. 08:00

(조선일보 2020.03.07 어수웅·주말뉴스부장)


[아무튼, 주말- 魚友야담]


어수웅·주말뉴스부장어수웅·주말뉴스부장

신종 코로나가 셀프 격리 생활을 강요하는 요즘입니다. 덕분에 다시 꺼낸 두 권의 소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중국계 미국 작가 켄 리우'종이동물원'(황금가지刊),

또 하나는 포르투갈 작가 조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해냄 刊).


켄 리우 휴고상·네뷸러상·세계환상문학상 등 SF 분야 최고상을 휩쓴 작가여서만은 아닙니다.

과학적 엄밀함과 미래 세계에 대한 혜안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그의 통찰에

동의했기 때문이죠. '종이동물원'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평온한 시절에는 교양인의 탈을 쓰고 점잖은 척하기가 쉬운 일이지만,

사람의 진정한 본성은 암울한 시절에 막중한 압박감에 시달릴 때에만 드러나는 법이다."


압박감에 시달릴 때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또 하나의 탁월한 소설이 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조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여기서 중요한 장치는 '감염'입니다.

예방약도 치료약도 없는 '실명 바이러스'. 어느 날 아침, 차 한 대가 신호를 무시하고 멈춥니다.

뒤따르던 차들은 경적을 울리고 곧 아수라장이 되죠.

가까스로 차에서 내린 주인공은 "눈이 안 보인다"고 호소합니다. 그리고 감염이 시작됩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잇따라 눈이 멀고, 마침내 도시 전체에 눈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이 퍼지죠.

무서운 건 지금부터. 정부는 이들을 집단수용소로 집어넣는데, 그 안에서 인간의 바닥이 드러납니다.

무질서·부패·폭력·착취의 아수라장. 내 안의 악(惡)이 여지없이 들통나면서, 세상은 아비규환으로 변합니다.

켄 리우 표현대로라면 인간의 진정한 본성일까요.


'눈먼 자들의 도시'가 영화로 만들어진 2008년, 생전의 조제 사라마구와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세상은 조금씩 더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선생님?"

대답은 차가웠죠. "세상은 마치 영원토록 끝나지 않을 것처럼 위협하는 재앙과 같다.

내가 묻고 싶다. 과연 이 재앙의 세계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까."


암흑은 우리에게서 부끄러움을 제거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눈먼 사람들. 문학은 종종 예방주사 역할을 합니다.

시 눈을 뜨게 됐을 때, 부끄럽지 않은 자신을 만날 수 있기를.



종이 동물원 : 켄 리우 소설
저자: 켄 리우/ 장성주/ 황금가지/ 2018/ 567 p
843.6-ㄹ948ㅈ=2/ [정독]어문학족보실/ [강서]3층 어문학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06/20200306020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