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3.10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나는 잭 웰치 퇴임 후의 GE를 관찰하며 경영상의 소중한 간접경험을 한 적이 있다.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이 2003년부터 GE와 합작 논의를 시작해 2017년까지 밀접한 합작 경영을
하면서 GE에 남아 있던 잭 웰치의 유산이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현대차 금융사들과 GE의 합작은 잭 웰치의 후임인 제프리 이멀트 회장이 직접 내한해 이룬 작품이고
GE 역사상 경영권 인수 없이 대규모 투자를 하는 첫 실험이어서 GE 내부에서도 관심이 높았기에
다양한 분야에서 고위급 교류를 하였고 내부 분위기에 대해서 생생한 느낌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합작 초기 GE의 조직 운영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고 당시 경영의 교과서였던 잭 웰치식 경영을 고스란히 맛볼 수 있었다.
금융까지 적용된 식스시그마 품질관리, 한 나라에서 성공하면 순식간에 전 세계 GE 법인에 전파되는 베스트 프랙티스
(Best Practice) 공유, 인재에 대한 놀라운 관심과 투자, 업적에 대한 공개적이고 냉정한 평가와 보상,
기업 내부의 매서운 준법 관리, 24시간 끊임없는 전 세계 임원들 사이의 논의와 이메일,
지역 담당과 사업 담당이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팀워크에 공헌하는 절묘한 매트릭스(matrix) 운영,
음속으로 이루어지는 사업 전개 능력, 명쾌한 전략 목표 설정 등을 보면서
'이런 조직이 실제로 존재하는구나'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면서 미묘하게 다른 징후가 감지되었다.
식스시그마는 여전히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한 치열한 고민은 사라져갔다.
여러 팀 간의 협동 과제에 대한 이메일은 계속 오갔지만 내용과 절실함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합작 파트너로서 매우 구체적이었던 GE의 의견은 조금씩 무뎌져 갔다.
분명했던 전략 설정은 모호해지고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사업의 정체성은 식사 자리 대화로
내려앉았다. 제도는 남아 있지만 제도의 힘과 의미는 상실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잭 웰치가 심어 놓은 가치와 제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같은 시기 GE는 조직력보다는 개인의 역량에
더 힘을 실어주는 등의 변화를 모색하였지만 과거 경영 방식을 대체하기에는 부족함이 보였다.
내가 받은 교훈은 경영학에서는 제도와 방법을 중점적으로 다루지만 실은 이들은 운영자와 분리하여 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제도는 자동으로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며 어느 제도가 다른 제도보다 더 우위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일부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잭 웰치의 경영이 한계를 보였다는 점은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다.
내가 본 바로는 잭 웰치의 경영 방식은 그의 퇴임으로 종료된 것이지 시대적 한계로 소멸한 것이 아니었다.
잭 웰치의 경영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불편한 점이 많지만 그가 계속 있었다면 그의 경영 방식은 효율적으로
운영되면서 시대 흐름에 따라 부드럽고 탄력적으로 계속 진화하였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지금 살아 있어도 아이폰 이야기만 계속하고 있었을까?
스티브 잡스의 경영이 팀 쿡에 의해 발전되고 보완되었듯이 잭 웰치의 경영이 후임자들에 의해 시대에 맞는
프레임으로 발전되거나 다듬어지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일 뿐이다.
잭 웰치는 IT 시대 이전의 제조와 금융산업 전성기에서는 가장 의미 있는 경영 방식을 만든 경영인으로
평가받기에 모자람이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09/20200309037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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