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춘, ‘포도초충도’, 중국 남송, 비단에 색, 26.8×27.8㎝, 고궁박물원 |
매미가 울고 연꽃 피는 8월이 되면 포도 알갱이에도 단물이 밴다. 이육사는 ‘청포도’에서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고 했다. 포도가 8월이 제철인 것을 감안하면 이육사가 언급한 칠월은 아마 음력이었을 것이다. 음력 7월이면 딱 지금이다. 포도재배지에서는 8월이 끝날 때쯤 포도축제를 열어 사람들을 유혹한다. 애썼지만 그다지 수확이 없는 여름이 지나간다. 여름이 다 지나가도록 부실한 생애의 줄기에는 포도씨만한 전설도 주저리주저리 열리지 않았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히지도 않았다. 빈약할 뿐이다. 이런 날은 결실이 주렁주렁 달린 포도밭에 가고 싶다. 미망에 사로잡힌 채 여름을 견디느라 지친 나그네가 고달픈 몸을 이끌고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둔 청포도집 주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 설령 청포(靑袍)를 입지 않고 남루한 가방을 멘 보잘것없는 손님이라 할지라도 반갑게 두 손을 잡으며 맞이해 주었으면 좋겠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길을 걷느라 퀭한 눈빛을 한 나그네를 위해 포도를 따 먹으며 두 손을 함빡 적셔 주었으면.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시의 힘은 위대하다. 이육사의 ‘청포도’를 알고 난 후 포도를 생각할 때면 묵포도보다 청포도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시에 담긴 ‘은쟁반’ ‘모시수건’ ‘푸른 바다’라는 시어(詩語)의 감동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아무리 탱글탱글한 포도를 들이밀어도 결코 청포도의 이미지를 대체하지는 못한다. 거봉이라 해도 어림없다.
그러나 화가들은 청포도보다는 묵포도를 선호했다. 이육사가 조금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청포도는 그 색깔 때문인지 ‘익어도 아직 청포도에 지나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이효석의 ‘청포도의 사상’ 중에서) 기왕이면 속이 꽉 찬, 제대로 여문 포도를 원했던 옛 사람들은 달착지근한 과즙이 응축된 느낌의 진한 묵포도 그리기를 좋아했다.
상황이 이럴진대 송나라 때의 화원(畵院)이었던 임춘(林椿)의 ‘포도초충도’는 청포도를 그린 귀한 작품이다. 그림 속의 포도가 청포도일까? 아직 익지 않은 검은 포도일까? 그림 속의 포도가 청포도인지 검은 포도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굵은 알이나 작은 알이 모두 푸른색인 것을 보면 청포도일 것 같다. 검은 포도가 알이 굵어지면서 색이 검게 변한 것을 생각하면 모든 알갱이가 한결같이 푸른색인 것이 그런 추측을 가능케 한다. 조금씩 변색되기 시작한 잎사귀의 색 또한 이 포도가 수확기에 이르렀음을 시사해준다.
작가는 청포도의 연한 색을 강조하기 위해 잎사귀를 짙게 칠했다. 여러 송이를 한꺼번에 그려 ‘그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게 하는 대신 한두 송이만을 크게 그렸다. 그리고 포도 송이에 코가 닿을 만큼 고개를 들이밀어 세심하게 관찰했다. 여러 종류의 곤충도 불러들여 이곳이 농약을 뿌리지 않은 유기농 산지임을 확인시켜주었다. 다양한 곤충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고서도 느린 걸음을 옮기고 짝짓기를 할 수 있는 곳. 이곳은 모든 생명들이 할당된 시간만큼의 생로병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는 곳이다. 생몰연대가 밝혀져 있지 않은 임춘이라는 화가는 중국에서 순희년간(淳熙年間, 1174~1189)에 활동한 작가로 화조(花鳥), 영모(翎毛), 과과(瓜果) 등을 잘 그렸다고 전해진다. 포도송이 곁에 잠자리와 사마귀, 메뚜기와 풍뎅이를 함께 그린 꽉 짜인 구도의 ‘포도초충도’는 베일에 가려진 화가의 이름이 명불허전(名不虛傳)임을 확인할 수 있다. 내 고장 칠월은 임춘의 그림 속에서 청포도로 익어갔다. 그러나 지금은 포도나무가 뽑힌 자리에 건물이 들어서 있다. 메뚜기와 사마귀의 짝짓기가 거세된 곳에서 출하된 포도만이 마트의 과일 코너에 무표정하게 진열되어 있다.
건강한 아이들이 포도송이처럼 번성하기를
조선시대 사람들은 포도 그림을 좋아했다. 포도 그림으로 이름을 날린 작가들 중에 대가들도 제법 많다. 초충도를 많이 그린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을 비롯하여, 황집중(黃執中·1533~?), 이계호(李繼祜·1574~1646 이후), 홍수주(洪受疇·1642~1704) 등 기라성 같은 화가들이 시대를 달리하며 좋은 포도 그림을 남겼다.
사람들이 포도 그림을 좋아한 이유는 무엇일까.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보기만 해도 풍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자식을 낳아도 성년이 될 때까지 살아남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다. 홍역과 질병으로 어린 시절에 세상을 떠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어른들은 가지가 찢어지도록 다글다글 붙은 포도송이를 보며 생각했을 것이다. 금쪽 같은 자식들이 한 명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포도송이처럼 영글어가기를. 그 생각은 소망이 되고 기도가 되어 포도만 봐도 자손 번창이 떠오르게 되었다. 그래서 포도는 많은 자식을 뜻하는 ‘다자(多子)’의 상징이 되었다. 여기에 좋은 의미를 하나하나씩 부여하다보니 포도나무의 생태를 예사롭지 않게 보게 되었다. 포도덩굴을 한자로 만대(蔓帶)라고 하는데 이는 만대(萬代)와 음이 같다. 자손이 끊이지 않고 계속 번성한다는 자손만대(子孫萬代)와 의미가 동일하다. 그러니 포도는 덩굴과 함께 그려야 제작의도가 확실히 반영된다. 그림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이렇게 자손의 무병장수에 대한 생래적 걱정과 기원이 담겨 있다.
한여름 뙤약볕을 견디고 나면…
이렇게 자식을 귀하게 여기고 자식 많이 낳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던 민족이 출산율 세계 꼴찌의 나라가 되었다. 원인이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직장을 가진 여성이 일할 동안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데가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아이를 기르면서 감당해야 할 교육비도 만만치 않다. 월급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천문학적 숫자의 학원비도 걸림돌이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취직은 더 힘들다. 어렵사리 취직을 해도 우리나라처럼 경쟁이 치열한 나라에서 직장인으로 버텨내기는 더더욱 힘들다. 어찌어찌하여 마흔이 넘으면 이번에는 실직공포에 시달려야 한다. 아이들한테 한창 돈이 필요할 때 직장에서 잘린 가장의 비애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길러 결혼시키고 나면 이번에는 빈손뿐인 노후가 기다리고 있다. 잠깐 살다 가는 인생길에 왜 이리 험난한 일만 기다리고 있을까. 마치 인생 자체가 장애물 경기를 하는 것 같다. 나는 기왕 태어났으니까 이런 고생을 감내해야겠지만 내 자식한테까지 이런 인생을 되풀이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이것이 아이를 낳지 않은 친구의 얘기였다.
그래도 나는 아이 낳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누군가에게 완벽한 희생을 요구하는 존재는 자식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힘든 존재를 힘들다고 불평하지 않고 길러봐야 비로소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하지 못하는 자식을 기르다 보면 나 아닌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이 생긴다. 아이를 통해 모나고 날카롭던 반쪽짜리 인격이 둥글둥글해지고 너그러워진다. 아이가 살아나가야 할 시간이 힘들어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포도가 맛있게 익으려면 한여름의 뙤약볕을 견뎌야 하지 않은가. 포도가 익어가면서 견디는 뙤약볕은 고통이 아니라 깊어지는 과정이다. 큰 지혜를 얻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미션이다. 힘든 미션을 성공시켰을 때 아이가 느끼게 될 성취감, 이것이 인생의 지혜가 될 것이다. 그 지혜를 얻기까지는 평생이 걸린다. 그러나 어렵기 때문에 더 맛있는 포도다. 더 귀한 자식이다. 이렇게 우리 동네의 7월은 포도처럼 주렁주렁 열린 아이들의 이야기가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조정육 홍익대 한국회화사 석사, 동국대 박사 수료. 성신여대 대학원, 동국대 대학원 강의.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거침없는 그리움’ ‘꿈에 본 복숭아꽃 비바람에 떨어져’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우리나라 대표 그림’ ‘그림공부, 사람공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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