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그림으로 읽는 공자]불혹의 공자가 강물을 보고 생각한 것은-증점욕기

바람아님 2014. 3. 15. 12:06
▲ 양기성, ‘증점욕기’ 만고기관첩, 종이에 연한 색, 37.9×29.4㎝, 일본 대화문화관

    비가 쏟아진다. 쉴 새 없이 온다. 피해가 심각하다. 우리뿐 아니라 중국도 마찬가지다. 쓰촨성에서는 폭우로 수백 명이 사망했고 이재민 200만명이 생겼다고 한다. 필자는 7월 초에 동(東)티베트를 다녀왔다. 쓰촨성 청두(成都)공항을 출발해 루얼까이 대초원을 본 후 마지막에 지우자이거우(九寨溝)에 있는 지우황공항에서 청두공항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지우황공항을 떠나 청두공항으로 향한 직후부터 폭우가 시작됐다. 버스로 이동했던 도로는 물에 잠겨 끊어지고 건물은 물속에 둥둥 떠 있는 지경이 됐다. 하루만 일정이 늦었어도 지우황공항에서 출발조차 하지 못할 뻔했다. 하마터면 이 땅을 밟지 못하고 수장될 뻔했다. 물은 생명을 유지시켜 주지만 수많은 생명을 순식간에 빼앗아가기도 한다. 이런 물을 보고 공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공자는 노(魯)나라에 돌아온 후 기존의 흩어진 서적을 다시 쓰고 제자를 가르치며 불혹의 나이를 맞았다.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방법은 주로 묻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가르치는 틈틈이 그는 자주 강가에 서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보고 옆에 있던 제자 자공(子貢)이 강물을 바라보는 까닭을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강물이 흘러가는 것은 끊임이 없는데, 이것은 도(道)가 전승되고 세상에 전파되는 것이 잠시도 멈추지 않는 것과 같다. 물의 흐름에는 이와 같은 깊은 의미가 담겨 있으니, 군자는 흐르는 강물을 반드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공자는 물을 보며 도를 생각했다. 필자가 폭우를 피해 목숨 건진 것만을 운 좋게 생각할 때 공자는 물이 가진 덕과 물의 원리를 들여다볼 줄 알았다. 성인과 소인은 이렇게 차이가 크다.
   
   물은 민심을 반영하기도 한다. 좌구명(左丘明·춘추시대)이 지은 ‘국어(國語)’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기원전 842년에 주(周)여왕이 자신의 폭정을 비난한 사람을 죽이는데도 백성은 아무 말도 못했다. 왕이 그걸 자랑 삼아 말하자 대신 소목공이 이렇게 간했다.
   
   “그것은 백성의 입을 틀어막는 것에 불과합니다. 백성의 입을 막으면 강물을 막는 것보다 더 큰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둑을 쌓아 강물을 막았다가 일단 둑이 터지면 다치는 사람이 매우 많을 것입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물을 다스리는 사람은 응당 물길을 소통시켜 물길에 걸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백성을 다스리는 것도 그들을 인도하여 말하지 못하는 것이 없게 하고, 다하지 못한 것이 없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은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지만 물 자체는 잘못이 없다. 물을 다스리는 사람이 문제일 뿐이다. 물이 위험하다 해서 막아서는 안 된다. 물은 흘러야 한다. 민심도 역시 마찬가지다. 공자가 바라본 물이 쓰촨성 폭우처럼 다리가 끊어질 정도로 격렬한 물은 아니었을지라도 항상 부드럽게 흘러가는 고요한 물도 아니었을 것이다. 공자는 때론 고요하고 때론 요동치는 물의 외형적 모습을 너머 물이 가진 고유의 성질을 바라봤다. 공자는 자주 노나라 도성의 동북부에 있는 수수(洙水)와 사수(泗水)의 강변을 거닐며 제자들에게 도에 대해 가르쳤다.
   
   공자는 ‘요순우탕문무주공’으로 이어진 유학의 도가 자신을 통해 후세에 전해질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 그런데 과연 제자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제자들도 자신처럼 물을 보며 도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을까. 아무리 소리 높여 가르치면 뭐하겠는가. 스승의 사상이 제자들에게 계승되지 않는다면. 제자들의 생각을 확인하고 싶은 스승 공자의 궁금증이 ‘논어’의 ‘선진’편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 공자와 제자의 대화를 다룬 ‘논어’의 기록 중에서 가장 긴 내용일 것이다. 자로(子路), 증석(曾晳), 염유(冉有), 공서화(公西華) 등의 제자들이 공자를 모시고 앉아 나눈 대화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물었다.
   
   “평소에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만약 누군가 너희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공자는 제자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아야 군자답다”고 말했다. 그런데 드디어 기회가 생겨 누군가 나의 능력을 알아주고 채용할 의사가 있다고 치자. ‘그럼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고 각자의 포부를 묻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미래를 생각한다. 만약 내가 어느 기업체의 회장이 된다면, 내게 써도 써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큰돈이 생긴다면, 내가 유명하게 된다면 등등 항상 가정법을 쓰며 산다. 그러나 생각은 항상 거기까지다. 구체적 계획 없이 막연하게 ‘~한다면’에서 생각이 멈추기 때문에 계획은 구체성을 잃는다. 공자의 질문은 이런 막연한 생각에 대한 질책이자 자신의 가르침이 어떻게 전해졌는지 점검하고 싶은 스승의 욕심에서 나왔다.
   
   성질 급한 자로가 가장 먼저 대답했다.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삼 년 안에 백성들이 잘살 수 있도록 다스리겠다”고 자신만만하게 얘기했다. 공자는 웃었다. 염유와 공서화의 대답이 이어졌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이 부족하지만 예로 그 뜻을 다하겠노라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증석의 차례가 됐다. 증석은 세 사람과는 전혀 다르게 엉뚱한 대답을 했다.
   
   “늦봄에 봄옷이 완성되고 나면, 어른 대여섯 명과 아이들 예닐곱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쐬다 노래하면서 돌아오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공자는 무릎을 치며 화답했다.
   
   “나는 점(點)과 함께 하겠다.”
   
   증석은 이름이 점으로 증자(曾子)의 아버지다. 증자는 ‘효경(孝經)’을 지었다고 하는데 공자의 가르침 중에서 ‘수제(修齊)’의 맥을 이어 공자의 손자인 자사에게 전해줬다. 증자의 아버지인 증점의 대답은 일상생활을 담담하게 즐기는 성인(聖人)의 도를 체득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경지였다. 모든 계획은 평소 자신이 생각했던 삶의 철학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아무리 높은 자리가 생겨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배운 바대로 실천하며 살겠다는 대답은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이야기다. 양기성(梁箕星·?~1755)이 그린 ‘증점욕기(曾點浴沂)’는 증점의 대답을 바탕으로 그린 작품이다.
   
   기수에서 아이들 세 명이 헤엄치며 놀고 있다. 아직 물에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은 어른들의 얘기가 궁금해 그쪽을 쳐다본다. 그들 앞에는 어른 여섯 명이 담소를 나누며 걷고 있다. 한 명은 증점일 것이고 나머지는 함께 공부하는 도반일 것이다. 어른과 아이들 사이에는 나무 두 그루가 교차해 서 있다. 자연스러운 만남이지만 어른과 아이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따라가는 형식으로 그려져 있는 것도 ‘장유유서(長幼有序)’를 보여주고자 함이다. 그들의 모습에는 일상을 누리는 자의 넉넉함과 행복이 담겨 있다. 이런 행복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오랜 시간 공부하고 수신(修身)한 진짜 목적이다.
   
   지금 우리는 사는 데 급급해 이런 본래 목적을 잊어버린 지 오래다. 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도를 생각하기는커녕 그저 자신의 안전을 챙기는 데 급급하다. 날마다 비가 내리는 요즘, 거침없이 흐르는 물줄기를 보면서 내가 잘 가고 있는지 되돌아봐야겠다.

 

 

 조정육
   
  홍익대 한국회화사 석사, 동국대 박사 수료. 성신여대 대학원, 동국대 대학원 강의.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거침없는 그리움’ ‘꿈에 본 복숭아꽃 비바람에 떨어져’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우리나라 대표 그림’ ‘그림공부, 사람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