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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인의 조선가족실록] “아들 일은 해소 못 할 고통” 89세에 손자뻘 왕 앞에서 눈물

바람아님 2024. 1. 12. 03:22

중앙일보 2024. 1. 12. 00:35

황희 정승과 그의 자녀들

차남 황보신 부정축재 11년 추방
손자에 화 미칠까 아들 용서 빌어

자녀에겐 관대, 3남1녀 모두 말썽
“영상 자리 안 맞아” 사퇴 간청도

세종과 품격의 정치 보여줬으나
집안 다스리기는 실패 평가 나와

“신의 아들이 장물죄를 범해 관직을 삭탈 당한 지 11년이 되었습니다. 신의 나이 지금 89세이니 죽음이 조석(朝夕)에 달려 있습니다. 늙은 소가 새끼를 핥아 주는 심정이고 보니 아들의 일은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해소되지 못할 고통이옵니다. 부자의 정은 천성인지라 감히 천위(天威)를 범하고 죽음을 무릅쓰며 아룁니다.”(『문종실록』 1년 2월 2일)

아들의 죄를 구원해달라는 구순의 늙은 아버지는 20년을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자리에서 세종의 시대를 빛낸 명재상 황희(1363~1452)다. 차남 황보신(1401~1456)이 부정한 재물을 수수한 죄로 관직에서 파면되고 전답을 몰수당한 것이다. 조선에서는 뇌물을 먹은 관리를 다루는 법이 엄격했는데, 장리(贓吏-탐관오리라고 하는 경제사범)로 판결 나면 일신(一身)의 추락은 물론 그 자손들의 과거 응시가 금지되었다. 영의정 아들이라고 봐 주기는커녕 더 혹독하게 다루었다.

아들 황보신이 부정 축재로 서인(庶人)이 된 지 10년, 아비의 멍에를 지고 살아갈 손자들의 현실이 가시화되었다. 청백리의 상징 황희는 세상의 영예를 내려놓고 손자뻘 왕 문종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아버지 황희의 간절한 바람과 참회의 눈물은 자손들을 거듭나게 한 힘이 되었다. 능력과 인품에서 아버지 황희에 비할 바 아니지만 장남 황치신은 호조 판서를, 삼남 황수신은 영의정을 지냈다. 모든 것을 몰수당한 둘째 황보신은 처가의 터전 상주로 이주하여 그곳에 정착하는데, 증손대에서 인물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들은 ‘사당에 방촌(황희) 어른의 영정을 모셔놓고, 그 훌륭한 행실과 가르침’(『입재집』)을 기억하며 힘을 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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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인의 조선가족실록] “아들 일은 해소 못 할 고통” 89세에 손자뻘 왕 앞에서 눈물

 

[이숙인의 조선가족실록] “아들 일은 해소 못 할 고통” 89세에 손자뻘 왕 앞에서 눈물

━ 황희 정승과 그의 자녀들 “신의 아들이 장물죄를 범해 관직을 삭탈 당한 지 11년이 되었습니다. 신의 나이 지금 89세이니 죽음이 조석(朝夕)에 달려 있습니다. 늙은 소가 새끼를 핥아 주는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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