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4. 12. 20. 23:50
고2까지 전교 1등을 하던 남자가 한 번의 시험 때문에 내신이 추락한 후, 시험 공포증으로 사회 진출을 못 했다는 사연을 들었다. 글자 하나만 틀려도 새 제품을 사느라 수십 권의 쓰다 만 다이어리를 갖게 된 여자의 사연도 들었다. 이들은 자신을 완벽주의자라고 설명했다. 그들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는 건 완벽주의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작은 것까지 신경 써 최상의 결과를 만드는 전문가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청결 완벽주의자라고 소개한 남자의 방은 의외였다. 창틀 먼지, 손톱 위 거스러미 하나 참을 수 없다던 남자는 왜 떡진 머리로 쓰레기 방에 고립됐을까. 그는 책상 하나를 닦기도 전에 이미 지쳤다. 방 안의 먼지와 쓰레기를 완벽히 치울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이 완벽주의를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의하는 이유다.
완벽주의의 가장 큰 폐해는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시험을 보지 않으면 떨어질 일이 없고, 타석에 들어서지 않으면 삼진 아웃되는 위험은 없다. 성공의 정의가 성취로 나아가는 게 아닌, 실패를 막는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완벽주의를 게으름이나 회피에 대한 방어 논리로 사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하지만 완벽주의를 실패에 대한 불안으로 정의하면 우리의 기도는 ‘실패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 아닌,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으로 바뀔 것이다. 내가 쓰는 글 역시 완벽해서가 아니라 써가면서 점점 완성도를 높여 가는 것이다..... 완벽한 준비란 없다. 준비하면서 완벽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https://v.daum.net/v/20241220235018619
[백영옥의 말과 글] [385] 완벽주의라는 덫
'人文,社會科學 > 敎養·提言.思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영옥의 말과 글] [384] 왕관의 무게 (0) | 2024.12.14 |
---|---|
[백영옥의 말과 글] [383] 인생의 맛 (0) | 2024.12.07 |
[백영옥의 말과 글] [382] 불안의 해독제 (1) | 2024.11.30 |
[SNS세상] "하늘은 못 날고 마일리지만 날린다"…소비자 아우성 (0) | 2024.11.28 |
[백영옥의 말과 글] [381] 미안하다는 말 (2) | 2024.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