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디자인·건축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72] '오리지널'보다 더 유명해진 짝퉁

바람아님 2014. 7. 16. 12:18

(출처-조선일보 2014.04.26 정경원 | KAIST 교수·산업디자인)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포스터의 위력을 잘 보여주는 첫 사례로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만들어진 엉클 샘(Uncle Sam) 모병 
포스터를 꼽을 수 있다. 1917년 4월 2일,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참전 선포를 하자, 용감한 젊은이들의 자원입대를 독려하는
포스터가 필요하게 되었다. 미국 육군은 즉시 삽화가인 제임스 플래그(James M Flagg)에게 포스터 디자인을 의뢰했다.

미국의 엉클 샘 모병 포스터(오른쪽). 영국의 키치너 모병 포스터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 했다.
미국의 엉클 샘 모병 포스터(오른쪽). 영국의 키치너 모병 포스터(왼쪽)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 했다.
플래그가 자화상을 바탕으로 디자인한 포스터에는 별 달린 높은 모자를 쓴 백발의 엉클 샘이 날카로운 눈길로 쏘아보며 
소리치는 모습이 그려졌다. 정면을 향해 치켜든 검지는 포스터를 보는 사람을 지적하며 "미국 육군이 너를 원한다. 
가까운 모병소로 오라"고 지시하는 것 같아 삼엄한 기분이 들게 한다. 
엄격한 군대의 명령처럼 직설적으로 표현된 이 포스터는 의외로 젊은이들에게 잘 받아들여져서 2년 동안에 무려 400만 부나 
인쇄됐다. 엉클 샘이 부른다는 것은 곧 "위기에 처한 국가를 지키기 위해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인식돼 애국심을 
크게 고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포스터는 영국에서 이미 1914년에 제작된 '키치너 모병 포스터'를 거의 그대로 모방한 것이었다. 
영국의 육군 장관이었던 호레이쇼 키치너의 엄격한 얼굴과 표정, 정면을 향해 치켜든 검지, "대영제국이 그대를 원한다(Britons
Wants You)"는 구호는 판에 박은 듯 똑같다. 다만 "조국의 군대에 입대하라. 국왕 폐하 만세"라는 구호가 더 있을 뿐이었다.

간결한 명령조로 디자인돼 소구 효과가 높았던 키치너 포스터는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적대국이었던 독일·러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도 모방됐다. 그러나 표절에 따른 지식재산권 시비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요즘 같으면 독창적인 디자인 권리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법적 소송이 크게 벌어졌겠지만, 그 당시에는 아직 그런 개념이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