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디자인·건축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76] 기능과 동떨어진 장식의 한계

바람아님 2014. 7. 12. 09:36

(출처-조선일보 2014.07.12 정경원 KAIST 교수·산업디자인)


1960년대 미국에서는 히피(hippie) 문화가 크게 유행했다. 
기성 사회의 통념은 물론 제도와 가치관 등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생활을 추구하던 히피는 긴 머리와 요란한 색깔의 옷 등으로 
구분되었다. 히피들은 '사이코(psycho)'와 '딜리셔스(delicious)'를 합성한 '사이키델릭 아트'에 심취되었다. 
흔히 '환각 미술'이라고도 불리었는데, 환각제를 복용하여 극도의 심리적인 황홀 상태에서나 체험할 수 있는 선명한 색상의 
화려한 무늬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사이키델릭 아트의 선구자는 독일 태생의 그래픽 아티스트 피터 맥스(Peter Max)였다. 
맥스는 원색조의 형광 도료를 활용하여 디스코텍의 현란한 섬광과 음향 효과가 느껴지는 포스터, 대학 기숙사의 벽화 등 
다양한 작품을 제작했다. 1969년 '라이프' 잡지에 이어 뉴스위크, 타임 등의 표지에 등장할 만큼 인기가 드높았던 맥스(Max)는 
4도 인쇄 기술로 제작된 제품 광고로 갑부가 되었다.

뉴욕~버뮤다를 왕복하는 크루즈 선체의 그래픽. 사이키델릭 아트의 대가였던 피터 맥스가 디자인(2012년).
뉴욕~버뮤다를 왕복하는 크루즈 선체의 그래픽. 
사이키델릭 아트의 대가였던 피터 맥스가 디자인(2012년).
그처럼 대단했던 후광 덕분인지 맥스는 2013년 6월 노르웨이 크루즈 라인의 의뢰로 뉴욕과 버뮤다를 왕래하는 4000인승 
크루즈(14만4000t급) 선체를 장식하는 대형 그래픽 작품을 디자인했다. 선체에는 뉴욕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은 물론 
맨해튼의 스카이라인, 버뮤다의 작열하는 태양과 별 등이 환각 미술풍으로 그려졌다.

그런데 4만제곱피트(약 1124평)에 달하는 이 대형 작품에 대한 크루즈 평론가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조사 대상자 중 '좋다'는 사람은 3분의 1에 지나지 않고, 대다수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41%는 '거부', 25%는 '그저 그렇다'라고 답했다. 
세련된 형태의 크루즈 선체에 굳이 대형 뮤럴(벽화)을 그려 넣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과 
예술적인 가치가 약한 장식 수준이라는 것이다.
한때 사이키델릭 아트를 이끌던 실험정신은 간데없고 조형적으로도 새로움이 없으니 감동도 없다는 평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