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디자인·건축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69] 셰필드 철강 산업의 새로운 활로

바람아님 2014. 7. 1. 11:56

(출처-조선일보 2014.02.15 정경원 KAIST 교수·산업디자인)

데이비드 멜러 미니멀 5종 세트. 멜러의 세트 중 가장 진보적인 디자인이다. 가격은 100달러(2002년).
데이비드 멜러 미니멀 5종 세트. 멜러의
세트 중 가장 진보적인 디자인이다. 
가격은 100달러(2002년).
스푼, 포크, 나이프 등 식사 도구(cutlery) 세트는 삶의 품격을 좌우한다. 식탁과 의자, 식기가 아무리 세련되고 요리가 훌륭하다 해도 식사 도구 세트가 둔탁하다면 멋스러운 분위기가 갖춰질 수 없다.

영국 철강 산업의 중심지로 한때 칼과 창은 물론 총과 대포 등 고성능 무기를 만들던 셰필드(Sheffield)는 평화 시대를 맞아 
식사 도구 세트의 메카로 변신했다. 그런데 예기치 않았던 '디자인'문제에 부딪혔다. 표준화된 무기를 제작해 군대에 납품하는 
데 익숙한 제조업자들은 취향이 고상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선호하는 고객들 수준에 맞는 제품을 만들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그곳 출신 데이비드 멜러(David Meller·1930~2009)는 질 좋은 강철을 소재로 최고급 식사 도구 세트 
등 값비싼 제품들을 디자인해 셰필드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멜러는 어릴 때부터 디자인에 재능을 보여 셰필드 
미술대학을 거쳐 런던의 왕립 미술대학(RCA)에서 수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다음 수년간 실무 경험을 쌓은 후 1960년대에 
셰필드로 돌아온 멜러는 최고급 수제 식사 도구 세트를 주문 제작해주는 사업으로 크게 성공해 '식사 도구의 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스테인리스 스틸 세트'라는 영역을 개척한 멜러는 1969년 런던에서 첫 매장을 열고 값비싼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2002년 멜러가 디자인한 '미니멀(Minimal) 스테인리스 세트'는 스틸 소재의 특성을 잘 살린 단순한 조형미를 보여준다. 
다용도 나이프와 포크에 스푼 세 개를 곁들인 이 5종 세트는 단순한 형태와 고급스러운 공단처럼 우아한 광택이 나는 마무리로
마치 조각품 같다. 멜러가 디자인한 제품들은 여전히 셰필드의 공장에서 제작되어 런던과 맨체스터의 '데이비드 멜러 숍'은 
물론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에 판매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