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03.27)
독학으로 잡은 카메라로 사진작가가 되어 한국보다 세계에서 이름을 먼저 날렸다.
돈 많은 빌 게이츠가 이 사람의 작품 구입을 주저할 정도로,
이름값 제대로 하는 작가 김아타의 세계를 만났다.
예술계의 인물들을 보면, 한국보다 세계에서 먼저
인정을 받은 경우가 꽤 있다. 김아타 작가 역시 그런
경우에 속한다.
한국보다 뉴욕에서 먼저 알려진 그는, 아직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대접이 좋다. 2006년 아시아 작가로는
최초로 뉴욕국제사진센터(ICP)에서 전시하고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초청돼 특별전을 열며 글로벌 작가로
발돋움한 김아타.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한 그의 작품은 세계가
먼저 알아봤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백남준을
언급하기도 하고 피카소를 언급하기도 했다.
지금에야 한국에서도 이름값을 제대로 하지만,
시간 차가 좀 있었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가장 큰 오류다”,
“만약에 그가 미국이나 영국에서 태어났더라면 다른 삶이 펼쳐졌을 것이다”라는 말을 지겹도록 들어온 터였다.
30년 동안 예술가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온 그는, 그런 세상의 평가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다.
오랜만에 국내에서 개인전을 연 그를 만났다.
왕따 한국인, 뉴욕의 거물 되다
“개천의 용이죠. 사진을 전공하지도 않은 사람이 사진을 하겠다고 발버둥을 쳤으니.(웃음) 개천이라는 환경에는 긍정적인
요인과 부정적인 요인이 있어요. 저는 긍정적으로 보자는 주의입니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저는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아마 그렇게 살아오겠죠.”
1956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난 김아타의 본명은 김석중이다. ‘나와 너는 동등하다’라는 의미를 담아 ‘아타’라는 예명을 지었다.
사진작가라는 이름으로 오래 살고 있지만, 독학으로 사진을 전공했다.
소위 메이저의 길을 걷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학연도 없고 지연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선택한 길은 발을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힘든 길이었다.
“게다가 촌놈이, 그것도 사진을 가지고.(웃음) 사진이란 게 현대미술에서 발로 차이는 존재였잖아요. 제 상황에서 힘듦은 더욱
말도 못하죠.” 그러나 그는 그런 상황이 있었기에 작업에만 완전히 몰입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 한국이 아닌 뉴욕으로 무대를
옮길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영향이 작용했다.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그는 그 이상의 것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결핍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끊임없이 몰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예술이 고통이라는 말에 동의하지는 않아요.
예술이 고통의 산물이라면 내가 하는 고통이 작품에 고스란히 전달되거든요. 내가 고통스러운데 어떻게 감동이 있겠어요.
예술로서, 예술가로서의 존재 이유가 없어요. 제가 ‘아픔’으로 살았다면 절대 살지 못했어요.”
이런 그의 사고는 그의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아니 반대로, 그는 그 사고를 이어갈 수 있는 작업에만 몰두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화두는 그가 평생을 이어온 철학이다.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은 세상에 없던 작품들
이번 인터뷰를 위해 그를 두 번 만났다. 6년 만에 여는 개인전 갤러리에서 한 번, 그리고 파주의 작업실에서 또 한 번.
그간 그의 주요 작품들을 두루 접할 수 있었다.
먼저 6년 만에 열리는 그의 개인전이 신사동 313 아트 프로젝트. ‘리-아타(RE-ATTA)’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있는 이 전시에서는
그가 작가로서 주목받게 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뉴욕, 베이징, 뭄바이 등 세계 주요 도시의 특정 장소에서 8시간 동안
조리개를 열어둔 채로 촬영한 ‘8시간 시리즈’, 수만 장의 사진을 중첩하여 최종 이미지를 얻어낸 ‘인달라 시리즈’,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조형물들을 얼음 조각으로 만들고 그 조각이 녹아 들어가는 과정을 촬영한 ‘아이스 모놀로그’ 작품 등이다.
오랜 시간 전 세계를 대상으로 진행된 거대한 프로젝트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김아타의 작품은 재미있다.
생전 처음 보는 비주얼적인 압도감도 대단하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철학적인 메시지가
특히 흥미롭다. 작품에 담긴 철학은 그야말로 철학자 이상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인달라 시리즈 메시지 재미있어요. 도시마다 카메라를 설치하고 만 컷의 사진을 찍었어요. 그리고 그걸 레이어드했어요.
만 장의 사진이 모아져서 나온 결론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요. 뉴욕, 베니스, 뭄바이, 베이징 등 어느 곳이든 마찬가지였어요.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결국에는 희미한 이미지가 되는 거예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 있잖아요.”
그때 그는 자신의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적인 메시지를 잡았다.
그때부터 재미있는 작업이 시작됐다.
<도덕경(5290자)>, <논어(15817자)>, <반야심경(260자)>을 한 자 한 자 겹쳐서
최종적인 이미지를 얻었다.
모딜리아니, 칸딘스키 등 서양미술사 대가들의 작품도 같은 방식으로 작업했다.
빛이 사라지고 본질만이 남더란다.
“세상 모든 이치를 담고 있다는 <도덕경>을 한 자 한 자 포개니 솜사탕 같은 구름으로
변했어요. 색에서 빛을 찾았어요. 본질이 보였습니다.”
하얀 캔버스로 하는 작업, 카메라를 버렸다
그와의 두 번째 만남은 파주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이루어졌다. 세상의 모든 작업실이 아티스트의 취향과
현재를 고스란히
드러내듯, 그와 꼭 닮아 넓고 스케일이 큰 공간이었다.
작업실에는 다가오는 여름 전시를 앞두고 있는
‘드로잉 오브 네이처(Drawing of Nature) 시리즈’를
비롯한 그의 작품들이 세상에 나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카메라 대신 캔버스로 자연을 담는 작업인 드로잉 오브
네이처 프로젝트는, 그의 최근 프로젝트다.
“내가 이거 하려고 여기까지 했던 거였구나”라고 말할
정도로 예술가로서의 희열을 느끼는 중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하얀 캔버스를 선택했다.
사람들에게서 사진작가가 사진기를 버렸다는 말도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그가 말하려고 하는 철학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자연이라는 카메라잖아요. 카메라라는 기계가 빠진 거지, 개념은 같아요. 사람들이 하도 카메라 버렸다고 하니까.”
지구촌 곳곳의 역사적인 공간에 커다란 캔버스를 세워놓고, 2년간 비바람을 맞게 했다. 장소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일본 히로시마, 인도 갠지스 강변, 우리나라 비무장지대, 제주도 바닷속 등.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게, 오직 자연 속에
세워뒀다. “자연이 스스로 그린 그림이에요. 순간의 시간을 담아내는 사진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어요. 자연과 도시 곳곳에
세워진 캔버스는 카메라가 없을 뿐이지 그곳의 모든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서 지구 환경과 인류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가 캔버스를 마주하고 처음 뱉은 말은 ‘바로 이거였구나!’였다. 지금 당장, 혹은 내일 당장에라도
재미있는 것이 나타난다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열린 그이지만, 지금 마무리를 하는 이번 작업에 대한 그의
애착은 남다르다.
“캔버스를 세우는 작업이 간단하지만은 않았어요. 주로 분쟁 지역이거나 사람들의 출입이 제한되는 곳이어서 현지의 허가를
받아야 했거든요. 그냥 땅에 캔버스 하나 설치하는 차원이 아니라, 건축물을 세우는 것과 같은 절차를 밟아야 해요.”
덕분에 크고 작은 에피소드도 많다. 바닷속 잠수함에 걸쳐놓은 캔버스는 태풍을 맞아서 물에 떠내려가기도 하고, 숲 속에 쌓은
캔버스는 산양이 와서 뿔로 구멍을 뚫어놓기도 했다. 중국에 설치한 캔버스는 분실이 되기도 했는데, 그들에게 커다란 캔버스는
훌륭한 땔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 온에어 시리즈. 파르테논 얼음 신전이 녹는 과정을 기록했다.
-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개념이 바탕이다.
- 8시간 시리즈. 뉴욕 타임스퀘어를 조리개를 8시간 열어두고 찍었다.
- 거리의 움직이던 사람들과 자동차는 남지 않고 텅 빈 공간만 남았다.
“지금 강원도 인제에 캔버스가 하나 있어요. 바람에 날아가 다시 설치를 해서, 다른 작품들보다 철수 날짜가 늦어요.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중간에 답사를 가서 확인을 하는데요. 그때의 감흥은 정말 어떻게 표현이 안 돼요.
자연의 힘이 이렇게 위대하구나 생각이 들면서 절로 눈물이 펑펑 쏟아집니다.”
드로잉 오브 네이처 작품들은 여름 전시 계획에 있다. 작가도 상상하지 못한, 자연의 손길이 오롯이 담긴 캔버스는 그가 시도한
또 하나의 혁명 시리즈가 될 것이다.
분명 같은 시간과 시대를 살고 있지만, 예술가들은 그들만의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김아타는, 그런 예술인의 삶이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다고 한다.
“성직자들과 비슷한 맥락이 있는 것 같아요. 뭔가 특별할 것 같잖아요. 예술가들은 그것보다 조금 더 열악해요.
그들은 헌금과 보시가 있지만, 예술가들은 소위 ‘빵’이 해결이 안 되니까. 혼자서 다 해야 해요.”(웃음) 그는 외로움을 즐긴다.
사람들과의 소통도 최소한이다. 외로워야 진정한 인간관계가 형성이 되는데, 외로울 줄 모르고 사색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
속에 있어도 외롭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가 예술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누구나 ‘재미있겠다’ 싶은 마음에 출발은 하지만
중간에 슬그머니 사라지는 사람이 넘쳐나는 예술가의 세계. 그는 자기를 완전히 놓지 않으면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이 바로
예술이라고 한다. “죽거나 살거나, 자기를 완전히 집어넣어야 해요. 자기를 완전히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에게 작업은 더 외롭고 더 고독해지기 위한 하나의 해방구다. 그것이 예술가의 길이라고 믿는다. 인간적인 관계나 사회적인
관계를 배타하는 건 아니지만, 타인과 자신의 어쩔 수 없는 공간을 받아들이고 치열한 세계를 살고 있다.
<불로그내 다른 글 링크>
사진가 김아타 개인전 - "9·11 겪은 뉴요커, 내 작품 보고 통곡"
<다음번 게시 예정>
Why[곽아람 기자의 캔버스] 철학을 찍는 아웃사이더 (2014.06.14)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6/13/20140613023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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