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조사 기관인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은 29일 오후 3시30분 충북 충주시 호암동 택지개발사업부지 내 유적에 대한 현장설명회를 개최한다.
횡구식 고분(橫口式 古墳)은 먼저 세 벽을 구축하고 천장돌을 덮은 다음 한쪽으로 주검을 넣고 밖에서 벽을 막아 만든 무덤을, 석실묘(石室墓)는 돌로 널을 안치하는 방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쌓아 올려 봉토를 만든 무덤을 뜻한다. 추가장(追加葬)이란 돌방무덤(石室墓) 단계에 이르러 앞트기(횡구식) 또는 굴식(횡혈식) 출입시설을 갖추면서 추가로 여러 번 장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고려~조선시대 분묘는 총 1300여 기가 발굴돼 청동거울(銅鏡)과 인장(印章, 도장), 그릇, 숟가락, 젓가락, 도자기 등이 발견됐다. 특히 인장 3점에 장식된 사자 등 동물 문양은 해학적이고 특이하며, 글자는 鳳(봉) 등으로 해석되는 것 외에는 추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총 28점이 출토된 거울은 최대 지름이 23cm인 쌍용운문대경(雙龍雲文大鏡, 두 마리 용과 구름문양)과 팔사자문경(八獅子文鏡, 여덟사자문양) 등이 있으며,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진 거울을 통해 고려 시대의 뛰어난 미적·공예적 가치가 엿보인다.
고려시대 토성은 4m 폭으로 석렬(石列)을 1단으로 배치하고, 그 위에 흙을 쌓아 올린 것이다. 성벽에 일정한 간격(50~70m)으로 치성(雉城)을 갖추고 있다. 치성(雉城)은 성벽에 접근하는 적에 대한 관찰과 방어를 위해 성벽의 바깥으로 돌출되게 덧붙여 쌓은 성의 구조물이다. 또 성벽조사 과정에서 '龍山寺(용산사)', '官(관)'자를 새긴 기와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근거로 토성의 축조 시기인 13세기를 전후하여 주변에 용산사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어 흥미롭다.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기왓가마 6기 중 한 가마에서는 수키와, 암키와, 벽돌 등 551점이 차곡차곡 쟁여진 상태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이는 기와를 굽다가 천정이 무너지면서 폐기된 채 유지된 것으로, 가마 내 기와의 재임방법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과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호암지구 발굴유물 특별전'과 학술심포지엄 등을 공동개최할 예정이다. 아울러 토지주택공사는 충주 호암동 유적의 중요 구간을 정비한 후, 유적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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