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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모범생이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 과학 없는 인문학은 존재 의미가 없다

바람아님 2014. 10. 11. 11:35
  • 모범생이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


    (출처-조선일보 2014.10.11 이한수 문화부 기자)

    '봉급 생활자'만 길러내는 학교… 일자리 창출하는 기업가 만들어야

    "일상 속 금융 교육은 부모가 맡아라"

'왜 A학생은 C학생 밑에서 일하게 되는가 그리고 왜 B학생은 공무원이 되는가'왜 A학생은 C학생 밑에서 일하게 되는가 그리고 왜 B학생은 공무원이 되는가
|로버트 기요사키 지음|안진환 옮김|민음인|476쪽|1만6000원

긴 제목에서 영어 알파벳은 대학 학점이 아니다. 
A는 'Academics(학자형)' B는 'Bureaucrats(관료형)' C는 'Capitalists(자본가형)'를 뜻한다.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자란 학자형 학생은 봉급 생활자가 되어 일자리를 창출하는 자본가형 밑에서 
일하고, 책임감은 있지만 조직의 보호에 숨으려는 관료형 학생은 공무원이 된다는 뜻이다.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는 1997년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출간으로 일약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원고를 받아주는 출판사가 없어 자비로 출판했는데 오프라 윈프리 토크쇼에 출연한 
이후 세계 109개국에서 출간되며 3000만부가 팔렸다. 국내에서도 외환 위기 이후 창업 바람을 타고 300만부가 팔리는 
밀리언셀러가 됐다. 하지만 많은 이가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창업했다가 실패하는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이번 책에서는 'C학생'이 되도록 가르치지 않는 학교 시스템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자본가(기업가)가 되기 위한 교육을 
강조한다. 기요사키는 "왜 학교에서는 돈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가. 학교 시스템은 아이들을 피고용인, 
즉 조직의 직원인 'A학생'이나 'B학생'이 되도록 훈련한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C학생'을 키우는 데는 관심이 없다. 
많은 젊은이가 자본가를 적대하는 태도로 무장한 채 사회에 나온다"고 비판한다. 
그는 "학교가 아이들을 현실 세계에 맞게 준비시키지 못한다면 가장 가까우며 중요한 교사인 부모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가난한 아빠'와 '부자 아빠'의 비교는 여전히 등장한다. 
기요사키의 친아버지인 '가난한 아빠'는 전형적 A학생이었다. 
미국 하와이주(州) 교육감을 지낸 엘리트였지만 은퇴 후에는 여느 사람들처럼 저축과 연금에 기대 살아가는 고학력의 가난한 
노인이 됐다. 그는 어린 아들에게 늘 "숙제는 다 했느냐"고 물었다. 
반면 친구 아버지인 '부자 아빠'는 중학교 중퇴 학력이었다. 아들과는 '모노폴리 게임'을 하며 놀았다. 
화폐와 물건을 교환하면서 부자가 되는 이 게임을 통해 아들이 자본가처럼 사고하도록 훈련했다.

돈을 쌓아두고 환호하는 저 부자처럼 아이를 키우려면 어릴 때부터 돈에 대한 토론과 금융 교육을 해야 한다고 

기요사키는 주장한다.  “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같은 말은 가난한 이들의 핑계일 뿐이라는 

도발적 언설이 책에 가득하다. /Getty Images 멀티비츠


기요사키는 부자 아빠의 입을 빌려 말한다. 
"A학생은 학교에서는 뛰어났을지 몰라도 자기 사업을 시작하고 운영할 배짱이 없거든. 
보수를 받고 일하는 법은 알지만 사업을 구축하고 돈을 버는 방법은 모른다. 
그래서 A학생이 C학생을 위해 일하는 거다. 
B학생은 책임감은 있지만 위험을 두려워해. 대부분 A학생과 B학생은 자신의 결정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는 부문에서는 
살아남지 못한다." 
기요사키는 아이를 C학생으로 키우려면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돈 문제를 함께 토론하고 남의 돈(빚)을 이용해 
부자가 되는 방법을 포함한 금융 교육을 어릴 때부터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A형' 또는 'B형'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불편한 대목이 수두룩하다. 
"사회복지 제도는 영혼을 내부에서부터 좀먹는 암 덩어리다" 
"오늘날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으면 실업수당부터 신청한다. 실업자가 어떻게 수당을 받을 자격이 된단 말인가?" 
"관료는 일을 잘하든 못하든 자기 몫을 챙겨간다"…. 
2012년 소유 기업을 전략적으로 파산시키고 개인 자산을 지킨 영리한(?) 'C형' 저자는 독하게 말한다. 
"돼지에게 노래를 가르치려 하지 마라. 너에게는 시간 낭비고 돼지에게는 괴로운 법이다. 
가난한 사람이 맥락을 바꾸지 않는다면 부자가 되는 법을 가르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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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으로 세상읽기] 과학 없는 인문학은 존재 의미가 없다

(출처 - 조선일보 2014.10.11  이덕환 서강대 교수)

	김영식 '인문학과 과학'

김영식 '인문학과 과학'

정부 요직은 몽땅 문과 출신이 맡는 세상이다. 
이과는 미래부와 환경부 장관뿐이다. 
어쩌다 이과 출신을 장관에 앉히게 되면, 차관은 문과 출신에게 
맡겨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대통령이 이과 출신이어도 그렇다.
물론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문과 출신이 더 좋은 
적임자라는 근거도 없다. 대기업들이 이과 출신을 선호하는 
현실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문·이과 구분이 사실은 동서양의 
학문적·문화적·사회적 전통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고, 현실적으로도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 세상은 문·이과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과거의 위대한 학자나 사상가들은 예외 없이 과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려면 자연과 인간의 정체를 밝혀주는 과학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학·경영학·심리학·인류학을 문과라고 우길 수도 없고, 
언론·금융·행정·통일·국방이 문과 출신의 독점 영역이라고 할 수도 없다. 
화학을 전공하고 나서 인문학자로 변신한 김영식 교수의 '인문학과 과학: 과학기술 
시대 인문학의 반성과 과제'(돌베개)에 따르면 그렇다.

문·이과의 구분은 일제가 남겨준 비정상적인 교육제도 때문에 굳어진 것이다. 
깊은 사유와 성찰보다 말초적 성과에만 매달리는 기능인 수준의 인문학자와 과학자가 
문·이과의 구분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문·이과 구분의 폐해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
대부분의 학생에게 적성과 진로의 절반을 포기하도록 강요한다. 학생들에게 학습 부담을 줄여준다는 주장도 사실은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교육비의 절감을 감추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순진한 문과 출신들이 과학기술에 의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와 문화의 현실을 외면하고, 과학기술이 인간을 황폐화
시킨다고 억지를 쓰게 하는 것도 문·이과 구분이다. 
어려웠던 시절에는 도움이 되기도 했던 문·이과 구분이 
이제는 우리의 선진국 진입을 가로막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과학을 외면하는 인문학은 존재 의미를 찾기 어렵다. 
우리 인문학도 과학화·기술화·정보화를 핵심으로 하는 과학기술 시대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해야 한다. 
어렵다는 이유로 수학·과학을 포기시키는 것이 문·이과 '통합'이라고 우기는 교육부도 
변해야 한다. 모든 학생이 과학의 진정한 가치를 인식하고 즐기도록 해주는 
과학 중심의 새로운 교육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