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책·BOOK

( 문화.북스-조선일보 2014.09.25) 당신 마음은 얼마나 타들어갔나요

바람아님 2014. 9. 28. 19:10


1.당신 마음은 얼마나 타들어갔나요

스트레스와 걱정이 쌓이면 마음은 저 성냥개비처럼 타들어간다. 
무력해지고 일에 냉소적인‘번아웃’상태에 빠질 수 있다. /시공사 제공  


걱정은 할수록 더 깊어지는 감정
상대가 바뀔 거란 기대는 하지 말고 
거절하는 연습·자기 관리부터 하라

걱정도 습관이다정신과 전문의 최명기 울산대 교수

번아웃크리스티나 베른트


영단어 'worry(걱정)'를 붙잡고 뿌리를 캐면 '목을 조르다' '숨이 막히다'라는 뜻이 

나온다. 근심은 이렇게 역사가 길고 치명적이다. 

마음을 '졸이고' 속을 '태운다'는 우리말도 있다. 
걱정은 몸 안에서 번지는 불길을 닮았다. 
밖에서 난 화재라면 소화기로 끄겠지만 안에서 쥐고 흔드니 다른 대처법이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1세기 
최대 위험으로 지목한 것은 에볼라 바이러스도 에이즈(AIDS)도 아니고 직업적 스트레스다.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 울산대 교수가 쓴 '걱정도 습관이다'(알키)는 걱정을 달고 살던 사람에게 '멘탈 갑(甲)'으로 거듭나는 
법을 일러준다. 독일 저널리스트 크리스티나 베른트'번아웃'(유영미 옮김, 시공사)은 우울한 상황을 이겨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걱정의 뿌리를 찾아라

심은 몰두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이다. 일을 맡기곤 끝없이 확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의심이 들어 확인하려는 심리는 가려울 때 긁는 행동과 같다"고 최 교수는 말한다. 

당장은 가려움이 잦아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 가려워진다. 걱정을 사서 하는 셈이다. 

닦달하는 상사는 부하직원 입장에선 스트레스 덩어리다.

'걱정도 습관이다'는 의심 아래 놓은 '뿌리 감정'을 찾아내 바로잡으라고 말한다. 
우리를 지배하는 감정은 나무로 치면 가지나 잎과 같다. 뿌리에 병이 깊으면 아무리 예쁘게 
가지를 치고 잎에 물을 줘도 소용없는 짓이다. 
이 책은 또 "상대가 바뀔 거라는 기대는 접으라"고 잘라 말한다. 
두 사람 중 어느 한 쪽만 문제를 인식하고 일방적으로 상대를 고치려 할 경우 관계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마음만 무너진다.
인간의 마음은 
①나도 알고 남도 아는 부분  ②나는 알지만 남은 모르는 부분 
③남은 알지만 나는 모르는 부분  ④나도 남도 모르는 부분 등 네 가지로 나뉜다. 
나는 알지만 남은 모르는 치부를 감추려고만 하고 남은 알지만 나만 모르는 단점을 계속 부정하면 인생이 꼬인다. 
반면 나는 알지만 남은 모르는 부분을 말하고 나는 몰라도 남은 아는 부분을 받아들일 때 사람은 성숙해진다.

◇번아웃을 막으려면
'번아웃'(Burnout)은 1970년대에 처음 등장한 용어다. 
간호사처럼 남을 돌보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이 탈진 증상이 발견됐다. 
사명감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일하다 피로와 압박감이 지나쳐 무기력해지고 일에 대해 냉소적으로 변해간다. 
이 번아웃 증후군은 이제 모든 직업군에서 나타난다.

다 타버린 몸과 마음이 보내는 구조요청과 같다. 
그런데 큰 스트레스와 역경에 무너지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번아웃'은 그런 회복탄력성의 비밀을 들여다본 책이다. 
칼륨액을 항생제로 알고 주사한 의료 사고로 세 살 난 아들을 잃은 엄마는 "누구나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병원과의 긴 소송 끝에 이겨서 받은 보상금을 그 병원에 기부했다. 
"어떤 불행을 겪든 자신에게 시련을 준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운명과 화해하는 게 중요하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견고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들도 때로는 힘겨워하고 바닥에 주저앉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다시 시작할 힘을 낸다. 회복탄력성도 학습할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베른트는 "적당한 스트레스는 예방주사처럼 좌절을 막아준다"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과 긴장이 풀린 편한 시간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요구된다"고 썼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를 긋고 거절하는 연습,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스위치 OFF
개인이 더 많은 자유와 결정권을 쥔 시대는 바꿔 말해 개인이 모든 것을 다 책임져야 하는 시대다. 
스트레스와 걱정이 쌓여간다. 번아웃은 연료 부족을 경고하는 계기판을 무시하고 달리다 멈춰선 자동차와 같다.

삶의 사건과 스트레스 지수. 걱정에 대한 명언.

'걱정도 습관이다'는 
"나도 알고 남도 아는 '나는 나' 영역을 넓히라"고 
조언한다.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야 인생을 
대부분 통제할 수 있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할 일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남의 눈치를 보며 불안해하고 넘치는
생각들로 피곤하기 짝이 없는 나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자기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고 
인정해야 한다"고 썼다.
우리는 사실 몽롱하게 살아간다. 
"그럭저럭 잘 지낸다"는 말로 자기가 처한 현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한다. 
이메일과 스마트폰 때문에 노동과 휴식의 경계도 흐려졌다. 
몰두하거나 긴장하지 않는 '오프라인 상태'가 하루 중 얼마나 되는지 따져볼 일이다. 
과할 땐 마음의 스위치를 'OFF'로 바꾸자. 이쪽 불을 꺼야 저쪽이 환해진다.



2.적을 만들다|움베르토

 


	'적을 만들다'

적을 만들다|움베르토 에코 지음|김희정 옮김|열린책들|313쪽|1만7000원

움베르토 에코(82)의 말과 글을 한자리에 모은 책이다. 그가 2000년 이후 학술대회에서 한 강연과 신문잡지에 쓴 칼럼을 모았다.
청탁을 받아서 쓴 글이기에 책 부제를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이라고 했다.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으로 통하는 저자의 명성에 걸맞게 기호학·인류학·문학·천문학·지리학·종교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식의 향연이 펼쳐진다.

책머리를 장식한 글 '적을 만들다'는 오늘날 유럽을 지배하는 극우파의 외국인 혐오증을 비판했다. 
인간 사회가 고대부터 집단 정체성을 굳건히 하기 위해 외부의 적(敵)을 상정한 습관이 21세기에도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피부와 언어, 문화가 다른 타자(他者)를 이해해야 한다고 설교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에코는 "현실을 주목하자"며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인간은 외부의 적이 없으면, 
내부의 적이라도 희생양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옥, 그것은 타인"이라고 한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했다. 
에코는 "우리는 타인을 적으로 만들고, 그 위에 산 자들의 지옥을 건설한다"며 인류의 어리석음을 냉소적으로 질타했다.

이 책에 실리진 않았지만, 에코는 프랑스 주간지 '마리안느'와 가진 인터뷰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것만이 유일하고 충분한 
해결책이 아니다"고까지 말했다. 그는 주간지 기자에게 독한 유머를 날렸다. 
"당신이 내 아내와 섹스를 한다면, 나는 당신의 입장에서 서서, 누구보다도 당신을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친구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에코는 인간이 지닌 합리적 이성과 미학적 감성을 신뢰한다. 
그는 '절대와 상대'란 주제의 강연에서 절대적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 몰라도 인간은 진리 탐구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시인 단테의 말을 인용했다. 
"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 표현의 불가능성을 말한다"고 했다. 
시인 키츠도 인용했다. 
"아름다움은 진리고, 진리는 아름다움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알고 있고,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는“절대적인 지식은 존재하지 않으며, 지식은 그 중심으로 다가갈수록 더 혼란스러워진다”고 말한다. 아낌없는 불만과 날카로운 지적, 휘몰아치는 화법은 여전하다.
 움베르토 에코는“절대적인 지식은 존재하지 않으며, 지식은 그 중심으로 
다가갈수록 더 혼란스러워진다”고 말한다. 아낌없는 불만과 날카로운 지적, 
휘몰아치는 화법은 여전하다. /조선일보 DB
에코는 강연 '검열과 침묵'에서 21세기 문명의 소음을 조롱했다. 
1930년대 이탈리아 파시즘 정권은 보도 지침으로 언론의 입을 막아 침묵 사회를 관리했다. 
그러나 21세기 언론은 온갖 스캔들을 떠들썩하게 보도함으로써 사태의 본질을 호도한다. 
요즘 이탈리아 언론이 동유럽 이민자의 범죄를 요란하게 과장 보도함으로써 외국인 혐오증을 부추긴다는 것이다. 
게다가 광고도 요란하게 제품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각인시키기 때문에 21세기는 소음 중독의 시대라는 것이다.

그래서 에코는 "내면의 인간으로 돌아가라"며 침묵을 호소한다. 
기호학자들에겐 '침묵의 기호학'을 연구하라고 당부한다. 
'연극 장치로서의 적막, 
정치적 논쟁 속의 침묵, 
위협을 조성하는 침묵, 
음악 속의 고요'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에코는 스스로 "내가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니다"라며 "내 지식을 한자리에 모을 뿐"이라고 말해왔다. 
이 책은 그가 읽은 책들에서 찾아낸 지혜와 격언과 속담의 숱한 인용으로 꾸며졌다. 
그는 "청탁받아서 쓴 글이 반드시 독창적일 필요는 없지만,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에게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며 
적절한 인용의 축제를 벌인다.



3.기계와 기술이 만든 예술의 매력



	'디지털 아트'

디지털 아트|노소영 지음|자음과 모음|292쪽|1만8000원


대통령의 딸, 대기업 총수의 아내, 요즘은 딸을 해군사관학교에 보낸 엄마로 유명세를 탔지만 

노소영의 본업은 예술, 디지털 예술이다. 

국내 유일의 디지털 아트 전문 미술관인 '아트나비센터' 관장으로 15년 동안 일하면서 보고 겪은 

디지털 아트의 현장을 책으로 엮었다. 

기계와 기술을 가지고 논다는 '디지털 아트'가 무엇인지, 그 뿌리는 어디에 닿아 있는지, 

'미술은 배부른 사람들의 놀이'라고 여겼던 한 사회과학도(그녀의 전공은 경제학이다.)가 

어떻게 하다 멀티미디어 예술에 매료되었는지 조근조근 풀어나간다.

"멀티미디어 예술에 관한 지식 지도를 그려보고 싶었다"는 저자의 열망은 대체로 성공한 듯 보인다. 

일단 쉽게 읽혀서 좋다. 순수예술의 종말을 알린 신호탄, 마르셀 뒤샹의 '샘'을 시작으로 앤디 워홀, 백남준 등 

21세기 디지털 아트를 탄생시킨 문화적 맥락을 짚어주는 1장부터 흥미진진하다. 

세계적인 디지털 아티스트들을 찾아다니며 나눈 이야기, 비하인드 스토리들도 소개된다. 

'손안에서 가지고 노는 모바일 미술관' 등 미래의 미술관, 미래의 예술 활동을 상상해보는 것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