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12.27 송희영 주필)
은행 구제 성공한 브라운, 관료의 벽 못 넘은 미야자와… 지도자는 결단하고 행동해야
집권 3년째 맞는 박근혜 정부, 목표 단순화·최고 정책 필요… 실행 주역 관료집단 잘 다뤄야
20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 고든 브라운이 영국 총리였다. 인기는 없었다.
전임 토니 블레어 총리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자자했다.
그를 비웃고 조롱하는 동영상과 노래 여럿이 그나마 고달픈 영국인들에게 신경안정제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인상적이었던 지도자를 꼽으라면 단연 브라운 총리다.
그러나 당시 인상적이었던 지도자를 꼽으라면 단연 브라운 총리다.
재무장관을 거쳤던 그는 금융 위기의 핵심을 알고 있었다.
리먼브러더스가 도산하자 곧 은행 구제에 나섰다.
그저 돈을 풀지 않고 곧바로 공적 자금으로 은행 자본금을 늘려주는 정책을 선택했다.
은행들의 기초 체력을 보강해준 셈이었다.
영국 경제가 18개월 만에 쇼크에서 벗어났던 출발점은 브라운 총리가 가장 골치 아픈 암세포를 치료해준 결정이었다.
그는 퇴임 후 인터뷰에서 "일본의 실패가 나에겐 교과서였다"고 했다.
그는 퇴임 후 인터뷰에서 "일본의 실패가 나에겐 교과서였다"고 했다.
1992년 여름 일본 경제는 갈림길에 서 있었다.
집권당의 최고 경제 전문가였던 미야자와(宮澤喜一) 총리가 휴양지 가루이자와에서 은행 부실을 청소하자고 제안했다.
미야자와는 금융회사들에 공적자금을 주입(注入)해 부실기업을 정리하고 우량 기업을 살리는 대청소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야자와는 관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재무성 관료들이 맹렬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미야자와는 관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재무성 관료들이 맹렬하게 반대했다.
관료의 반발을 보며 경제계가 들고 일어났다. 부실기업 정리에 왜 세금을 쓰느냐는 논리였다.
언론은 공개 질문서까지 보내며 명분론에 가담했다. 미야자와는 구조조정을 포기했다.
하지만 4년 후부터 장기신용은행, 채권 은행을 비롯해 거대한 금융회사들이 하나둘씩 무너졌다.
브라운과 미야자와는 금융·재정 정책에 정통한 정치인이었다.
브라운과 미야자와는 금융·재정 정책에 정통한 정치인이었다.
브라운은 자기의 판단을 믿고 마음먹은 정책을 실행했다.
미야자와는 옳은 판단을 하고서도 행동하지 않았다.
그 결과 결승골이 곧 터질 것만 같던 일본의 불황은 지루한 연장전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장기 저성장 물결에 휩쓸린 우리 경제에 간절하게 필요한 사람은 브라운이다.
장기 저성장 물결에 휩쓸린 우리 경제에 간절하게 필요한 사람은 브라운이다.
인기를 잃더라도 결단하고 행동하는 지도자 말이다.
지금의 집권세력은 우선 우리가 치료해야 할 급소(急所)가 어딘지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진맥할 때마다 진단이 헷갈리는 모양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경제부흥을 이루기 위해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경제부흥을 이루기 위해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경제 부흥이라는 표현도 케케묵은 것이지만 창조경제도 2년이 다 되도록 국민의 머릿속에 박히지 않고 있다.
올 들어 2월에는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을 내놓았다. 경제 민주화는 폐기 처분됐고, 규제 혁파가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그러더니 해가 저물기 전에 4대 개혁을 들고나왔다.
경제부흥, 창조경제, 경제 혁신, 규제 철폐, 구조 개혁이 뒤죽박죽 얽히고설켰다.
과녁이 여럿으로 분산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책도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다. 작년에는 복지(福祉)가 듬뿍 들어간 140개 국정 과제를 공개했다가
정책도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다. 작년에는 복지(福祉)가 듬뿍 들어간 140개 국정 과제를 공개했다가
이번엔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개혁을 내놓았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겹치는 것이 많긴 하다.
그러나 가수가 이 노래 저 노래 메들리로 섞는 마당에서 듣는 사람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브라운처럼 급소를 알지 못하니 미야자와처럼 수술용 칼을 뺄까 말까 망설이다 관두겠다는 것인가.
정책을 행동에 옮겨줄 관료 집단과의 마찰도 심상치 않다.
정책을 행동에 옮겨줄 관료 집단과의 마찰도 심상치 않다.
'공무원 집성촌(集姓村)'이라는 세종시에서는 야당 후보가 시장에 당선됐다.
사학·군인연금 개혁 구상은 하루 만에 없던 일로 뒤집었다. 집권당은 공무원 실수라고 단정했다.
올 2월에도 경제부총리가 설명한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이 며칠 사이에 온통 뒤바뀐 내용으로 다시 공개됐다.
그때마다 사전 협의 부족을 이유로 대지만 청와대와 실행 부처, 집권당과 관료 간의 거리는
그때마다 사전 협의 부족을 이유로 대지만 청와대와 실행 부처, 집권당과 관료 간의 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멀어지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현장 공무원들이 정성껏 집행할 리 없다.
이 정권과 관료 집단은 명령하면 복종하는 단계를 넘어 결별 수순을 밟고 있다.
정치 쇼를 몰랐던 브라운 총리는 인기 없이 지내다가 2010년 선거에서 참패했다.
정치 쇼를 몰랐던 브라운 총리는 인기 없이 지내다가 2010년 선거에서 참패했다.
그가 구상한 경제 구조조정 작업은 캐머런 정권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올해 스코틀랜드 독립 여론이 비등할 때 스코틀랜드 출신인 브라운은 독립에 반대하며
여론의 물줄기를 잡는 데 공을 세웠다. 정치적 복권(復權)을 이룬 것이다.
새해는 박근혜 대통령 집권 3년째다.
이제 백화점에서 욕심나는 물건들 중에 어떤걸 집어야 할지 알만할 때가 됐다.
정권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절박한 각오로 목표를 단순화해야 한다.
그러고선 최고의 정책 수단만을 골라야 한다.
정책을 실행할 관료 집단을 잘못 다루면 그들이 휘두르는 칼에 집권 세력이 오히려 당할 것이라는 사실도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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