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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균 칼럼] "북한의 진실을 봤다"는 신은미의 착각

바람아님 2015. 1. 13. 18:58

(출처-조선일보 2015.01.13 김창균 부국장 겸 사회부장)

공포 체제에 떠는 주민들에게 관광객은 잠재적 고발자일 뿐
북 당국의 사전 연출 없어도 체제 만족감 나타내게 돼있어
탈북자들의 체제 직접 체험과 자신의 여행담 동일시 말아야

김창균 부국장 겸 사회부장 사진'내가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체제(體制)에 박수를 보냈다. 

그곳에서 사는 것에 만족했고 즐거워했다.'

유태계 독일인 소설가였던 리온 포이히트방거(1884~1958)의 저서 '모스크바 1937년'의 한 구절이다.

그가 소련 기행문을 쓴 1937년은 수백만명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스탈린의 공포정치'가 정점(頂點)을 

찍던 시점이다. 포이히트방거는 그 유혈 참극의 한복판에서 시민들의 행복한 미소만을 목격했던 

모양이다.

"그냥 남한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평양 거리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고,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뛰어다녔다. 

출근길 지하철은 붐비고, 밤에 술집을 가면 여자들끼리 와서 수다를 떨었다."

종북(從北) 콘서트 논란의 당사자 재미교포 신은미씨가 강제 출국에 앞서 가진 인터뷰 내용이다. 

그는 평양에서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만 쓰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탈북자들이 증언한 고단한 삶도 북한의 한 부분이고, 내가 목격한 평양시민들의 삶도 북한의 또 다른 부분"이라고 했다.

포이히트방거는 히틀러의 위험성을 가장 먼저 경고했으며, 히틀러가 독일 총리가 되자 미국 방문 중 귀국을 포기하고 

망명 생활을 시작했다. 그랬던 그가 왜 스탈린 체제의 진짜 모습은 알아채지 못하고 오히려 감싸고도는 잘못을 범했을까.

공포 사회는 체제 내부와 외부를 철저히 분리한다. 

숙청과 처형 같은 폭정(暴政)의 도구는 주민들을 겨냥해 은밀하게 작동시키면서 바깥세상을 향해서는 지상낙원을 건설 중인 

양 위장한다. 포이히트방거는 나치 체제 내부에서 그 어두운 그림자가 덮쳐 오는 것을 눈치챘지만, 스탈린 체제에선 뜨내기 

방문객으로서 프로파간다의 매체로 활용됐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탈북자들은 김씨 체제 내부에서 공포를 몸으로 겪었던 반면,

신씨는 공포의 실체를 볼 수 없는 가림막 밖을 서성거렸을 따름이다. 

"탈북자들이 증언한 것도 북한의 일부이고, 내가 관광객으로서 목격한 것도 북한의 일부"라는 신씨의 주장은 

그래서 타당성이 없는 것이다.

포이히트방거는 모스크바 시민들과의 만남은 "예정에 없이 우연히 이뤄졌다"면서 

"그들이 나에게 한 말은 미리 준비해 온 게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신은미씨도 "북한의 전국 방방곡곡이 세트장일까.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모두 연기(演技)하는 것일까"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당국의 각본에 따라 동원된 사람들에게 속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정통성이 부족한 정권은 외부인과 접촉하는 주민들을 통제하거나 입단속을 하곤 한다. 

체제에 불만이 있는 주민들이 불쑥 등장해 치부(恥部)를 드러낼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반(反)체제 세력이 존재하고 때때로 정권과 충돌하는 나라, 

이를테면 우리나라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나 벌어지는 일들이다. 

체제에 맞선다는 생각은 머릿속에도 담아둘 수 없는 절대 공포 사회에서는 사전(事前) 연출이 필요없다.

김정은과 공동 정권을 운영한다는 말까지 들었던 고모부 장성택이 '건성건성 박수를 쳤다'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하루아침에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게 북의 체제다. 함부로 입을 놀리다가 어떤 일을 겪게 된다는 것을 주민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공포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상황별 대처법도 DNA에 아로새겨져 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은 모두 잠재적인 고발자로 간주한다. 

그들이 말이라도 걸어오면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최고 지도자를 향한 감사를 되뇐다. 

공포 사회에서는 전(全) 주민을 대상으로 상시 연출 시스템이 작동한다.

신은미씨는 평양 주민들이 서울 시민들과 똑같이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더라고 했다. 

신씨에게 북한을 공포 사회라고 하면 "근거를 대라"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소련 반체제 운동가 출신인 나탄 샤란스키는 공포 사회를 손쉽게 감별할 수 있는 '광장 테스트'를 제시했었다. 

광장 한복판에서 자신의 견해를 두려움 없이 밝힐 수 있다면 자유 사회, 그렇지 못하다면 공포 사회라는 것이다.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7시간 잠적, 구명조끼 타령, 어느 나라 대통령이냐'는 대형 플래카드가 며칠째 버젓이 걸려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 행적에 대한 비난이다.

 신씨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도 최고 지도자를 비난하는 격문을 본 적이 있는가. 

신씨가 '평범한 평양 시민의 삶'의 예로 들었던 술집의 수다 가운데 김정은이나 부인 리설주에 대한 험담을 한마디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신씨가 자신의 강제 출국을 정치적 박해로 포장해 순교자 흉내를 내는 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자신이 북한의 진실을 보고 전했기 때문에 쫓겨난 것이라는 착각에서만큼은 깨어나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