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가슴으로 읽는 한시] 해포에서

바람아님 2015. 1. 19. 11:59

(출처-조선일보 2015.01.19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가슴으로 읽는 한시 일러스트

해포에서


세상만사는 예로부터 뜻대로 안 되는 법


백발에는 전원에 가서 눕는 것이 제격이지.


산수에 묻혀 사는 그 넉넉함을 잘도 아니


조정에서 기억해 주지 않은들 뭐가 아쉬우랴.


베개 베고 누우면 해포의 파도소리 들려오고


발을 걷으면 오서산 산빛이 밀려든다.


동계거사가 이따금씩 찾아와서


술기운에 격한 말로 늘 나를 일으킨다.

蟹浦


萬事從來意不如(만사종래의불여)


白頭端合臥田廬(백두단합와전려)


已諳丘壑生涯足(이암구학생애족)


肯恨朝廷記憶疎(긍한조정기억소)


蟹浦潮聲欹枕後(해포조성의침후)


烏栖山色捲簾初(오서산색권렴초)


東溪居士時相訪(동계거사시상방)


得酒狂談每起予(득주광담매기여)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아계(鵝溪) 이산해(1539 ~1609)가 만년에 고향인 충청도 보령에서 지었다. 

해포는 고향 바닷가 이름이다.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랐어도 뜻대로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분노와 아쉬움을 삭이기에 좋은 곳은 그래도 고향 바닷가다. 

고향에 누우면 해포에서 들려오는 조수 물 오가는 소리와 오서산 산빛에 울퉁불퉁한 마음이 가라앉는다. 

보령의 명사로 동계거사(東溪居士)로 불린 아우(이산광·李山光)가 가끔씩 찾아와 

술 몇 잔 마시고 술기운을 빌려 격한 말을 쏟아낸다. 

그 말에 속을 뒤집어지는 때를 빼놓는다면 마음이 참 한가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