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꽃
하굣길에 소나기를 만났다
힘껏 뛰었다
게임방 입구에서 잠시 피했다가
다시 뛰었다
피자 집 담벼락에 붓꽃 한 송이
우산도 안 쓰고 비를 맞고 있었다
빗줄기가 세차게 때리는데도
눈을 감고 꿋꿋이 이겨내고 있었다
나도 뛰던 걸음을 멈추고
붓꽃이 되어 서 있어 보았다
멀리 골목 어귀에서
엄마가 우산을 들고
붓꽃처럼 웃고 서 있었다
―최명란 (1963~)
푹푹 찌는 무더위에 내리는 소나기는 얼마나 반가운가.
소나기가 쏴아- 쏟아지면 풋풋한 비 냄새와 풀냄새가 상큼하게 풍겨온다.
옥수수밭에 떨어지는 굵은 소나기 빗방울은 옥수수 알로 촘촘히 박혀 익어가고,
해바라기 밭에 내린 빗방울은 해바라기 씨앗으로 쿡쿡 박혀 여물어간다.
그러나 소나기가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소나기가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이 동시에 나오듯 하굣길에 갑자기 만나면 큰 낭패다.
소나기를 피해 힘껏 뛰다가 아이는 비를 맞고 있는 붓꽃을 본다.
세찬 빗줄기에도 눈을 감고 꿋꿋이 이겨내고 있는 붓꽃을 보고 아이는 붓꽃처럼 서 있어 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도 또한 이럴 터이다.
뜻밖에 소나기를 만나듯 힘들고 괴로운 일과 마주칠 때가 있다.
이럴 때면 우리도 붓꽃처럼 꿋꿋이 서 있어 보자.
그러면 소나기 굵은 빗방울은 우리 마음속에 알알이 씨앗으로 여물어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