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1246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16] 무명 선비의 항변 "이 초상화는 나를 잘못 그렸다"

(출처-조선일보 2012.06.24 손철주 미술평론가) 각이 바르게 선 동파관(冠)이 제법 높다. 동정 없는 곧은 깃에 소매 둥근 도포는 품이 낙낙하다. 배꼽 아래에서 두 손을 맞잡아 소맷부리에 꽃무늬 같은 마디가 생겼다. 가슴에 두른 새까만 끈목은 납작하다. 돗자리를 밟은 버선발이 희디흰데, ..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15] 꿈틀대는 용 무늬에 '大權의 기상'이

(출처-조선일보 2012.06.17 손철주 미술평론가) 조선 왕조에서 얼굴이 알려진 임금이 몇 명이나 될까. 남아있는 초상화와 사진 다 동원해도 열 명이 안 된다. 그 숱한 왕의 초상이 전란을 겪으며 대부분 불에 타버렸다. 조선은 '초상화의 천국'이라고 했다. 빈말이 아닌 것이, 나라를 세운 태..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17] 忠臣의 붉은 마음, 주름살과 사마귀에도 깃들었네

(출처-조선일보 2012.06.10 손철주 미술평론가) 고려말의 충신(忠臣)으로 유명한 유학자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 1392)의 초상이다. 누가 언제 그렸는지는 그림 속에 쓰여 있다. 그린 해는 1880년, 그린 이는 이한철(李漢喆)이다. 이한철은 조선 헌종·철종·고종 등 세 임금의 초상을 그..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13] 요절한 아저씨, 기억으로 되살려… 유족 울음바다

(출처-조선일보 2012.06.03 손철주 미술평론가) 소동파가 쓰던 두건을 머리에 얹고 주름이 드러난 도포 속에서 두 손을 맞잡은 이 사내는 조선 후기의 유생(儒生) 심득경(沈得經·1673~1710)이다. 이름이 좀 낯설다. 대신 그 집안을 들먹이면 알 만하다. 심득경의 어머니가 유명한 시조 시인 고..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12] 얼마나 염불했길래 염주 알이 저리 투명할꼬

(출처-조선일보 2012.05.27 손철주 미술평론가) 짙은 남색의 장삼 위에 붉은 가사가 선명하다. 녹색 매듭을 지은 금빛 고리는 마치 훈장처럼 반짝인다. 색깔이 눈에 띄게 대비되어도들뜬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매무시다. 다만 주인공이 앉은 의자의 장식이 요란할 정도로 복잡하다. 연두색 ..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11] 우리가 형제라는 걸 알아들 보시겠소?

(출처-조선일보 2012.05.20 손철주 미술평론가) 세 사람 중 가운데 있는 인물은 옷에 두른 띠가 다르다. 황금색 테두리 안에 붉은 장식이 든 학정금대(鶴頂金帶)다. 그는 수사(水使)를 거쳐 통제사를 지낸 조계(趙啓·1740~1813)다. 그 양 옆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같은 모양의 띠를 찼다. 왼쪽..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10] 그날 그녀는 알았다, 죽음과 입맞추리라는 걸

(출처-조선일보 2012.05.13 손철주 미술평론가) '계월향 초상' - 작자 미상, 비단에 채색, 105×70㎝, 1815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임진왜란 때 진주의 논개(論介)는 왜장(倭將)을 안고 남강에 몸을 던졌다. 평양에도 왜군의 간담을 얼어붙게 만든 여성이 있었다. 의기(義妓)로 추앙받는 계월향(..

[손철주의 옛 그림 옛사람] [9] 배운 자 나약함 다그치는 안경 속 그 눈길

(출처-조선일보 2012.05.06 손철주 미술평론가) '황현 초상' - 채용신, 비단에 채색, 120.7×72.8㎝, 1911년, 개인 소장.1909년, 전라도 구례에 칩거하던 매천(梅泉) 황현(黃玹)이 상경했다. 숨통이 할딱거리는 조선의 사직을 그는 확인했다. 그는 사진관을 찾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독사진을 찍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