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1246

[박종인의 땅의 雜事] 6.먹고 버린 소뼈가 성균관에 산을 이룬 이유에 대하여

조선일보 2021.06.25 00:00 작심하고 풀어보는 한일악연 500년사⑤ ◇소 잡기를 일삼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살우위사(殺牛爲事?소 잡기를 일삼다)’라는 문장이 두 번 나온다. 한번은 성종 때 소 잡기를 업으로 하는 백정을 설명할 때, 한번은 중종 때다. 백정은 소 잡는 게 일이니 당연한 표현이다. 하지만 중종 때 소 잡기 일삼은 이야기는 조금 충격적이다. ‘사학四學 관원들이 교회하는 데 뜻이 없어 유생이 모이지 않아 학사가 늘 비기 때문에, 노비들이 소 잡기를 일삼아[殺牛爲事?살우위사] 뼈가 구릉처럼 쌓였나이다. https://www.chosun.com/opinion/2021/06/25/Q2ASLF5MU5HPVHAM5NGZZBUUUI/ [박종인의 땅의 雜事] 6.먹고 버린 소뼈가 성균관에 산을 이..

[박종인의 땅의 雜事] 5.아무도 몰랐던 경복궁 돌덩어리들의 정체

조선일보 2021.06.18 00:00 작심하고 풀어보는 한일 악연 500년사④ ◇세종의 신무기 시스템 구축 ‘각 지방 육해군 사령관(절제사와 처치사)에게 문서 한 권을 보낸다. 무기 주조 방식과 화약 사용법이 세밀하게 기록돼 있다. 군국에 관한 비밀의 그릇이다. 항상 비밀히 감추고 하급 관리 손에 맡기지 말라. 임무 교대 때는 이 문서를 직접 인수인계하라.’ 집권한 지 만 30년 한 달 되는 1448년 음력 9월 13일, 조선 4대 군주 세종은 신무기 시스템 구축 완성을 선언했다. 3년 전 넷째 아들 임영대군 이구 감독 하에 진행해온 군사 프로젝트였다. 육군과 해군에 전달된 문서 이름은 총통등록銃筒謄錄이다. 화약 제조법과 화살과 탄환을 쏘는 화약무기 제작법을 담은 기밀문서다. https://www.ch..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9] 자귀나무로 백년해로의 축원을 담다

조선일보 2021. 07. 09. 03:05 화가 김후신은 생몰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으며 행적도 분명치 않다. 활동했던 시기는 대체로 영조 및 정조 연간의 18세기쯤으로 짐작된다. 이 그림은 기러기와 오리가 자연에서 노는 모습을 그렸으므로 ‘압안도(鴨雁圖)’ 혹은 ‘기러기와 오리’라고 한다. 바위가 코끼리 코처럼 길게 드리워 바닥의 바위로 연결되어 석문(石門)을 만들었다. 석문은 건너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을 것 같은 신비로움 때문에 옛 그림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오른쪽에는 고목 맛이 나는 큰 나무 한 그루가 석문 뒤편으로 자라 올라갔다. 그림의 소재로는 흔치 않은 자귀나무다. 잎사귀와 꽃을 단 가지도 석문 안팎으로 뻗어 있다. 화가는 작은 바위구멍은 물론 석문 안으로도 그려 넣을 만큼 이 나무에 정성..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8] 상서로운 동식물로 무병장수를 기원하다

조선일보 2021.07.02 03:00 조선 왕실의 종친이며 선비 화가인 이영윤(1561~1611)이 그렸다고 전칭(傳稱)하는 화조도다. 물이 흐르는 계곡 풍광을 담은 여덟 폭 병풍에서 남아 있는 두 폭 중 여름 그림이다. 화면 아래에서 오른쪽으로 불쑥 나온 바위에서는 하얀 꽃이 피어 있는 자그마한 치자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래로 길게 늘어지는 나뭇가지와 진한 초록 잎을 바탕으로 활짝 핀 꽃과 꽃봉오리가 적절히 섞여서 조화를 이룬다. 실제의 치자 꽃은 아기 주먹만큼이나 크고 우윳빛이 들어간 도톰한 꽃잎 6장이 거의 젖혀져 핀다. 그림 속 치자 꽃잎은 모두 5장이다. 그러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5장으로 그려 넣지는 않은 것 같다.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7] 무슨 소망을 품고 오셨나, 부처님 찾는 귀부인

조선일보 2021.06.25 03:00 홍살문이 살짝 보이는 조용한 절 입구에 지체 높은 귀부인이 나타났다. 점박이 조롱말을 타고 여종과 말구종까지 대동했다. 먼저 연락이 갔을 터이지만 영접 나온 스님 모습이 더없이 공손하다. 엄청 커다란 바위를 배경으로 작은 돌무더기가 조금씩 서낭당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다. 귀부인 일행도 잠깐 멈추어 작은 돌멩이 하나라도 얹어둘 만하건만 그냥 지나친다. 큰스님 만나고 돌아 나올 때 더 간절한 소망을 담을 심산이다.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1/06/25/NHSAG6A7W5FQVNSRCWBW6FKIFU/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7] 무슨 소망을 품고 오셨나, 부처님 찾는 귀부인 [박상진의..

[박종인의 땅의 雜事] 4.조선의 하늘 위로 날아간 하얀 공작새

조선일보 2021. 06. 18. 00:00 작심하고 풀어보는 한일 악연 500년사③ 서기 1543년 9월 23일 일본 권력자들은 대량살상을 너무나도 쉽게 가능케 하는 무기를 습득했다. 권력자는 권력을 더 강력하게 유지할 수 있었고, 사무라이들은 유럽 중세 기사들처럼 몰락의 길을 걸어갔다. 그날 이후 위계질서로 정교하게 설계돼 있던 천하天下가 파괴되고 지구가 세계世界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천하를 고집하던 나라들은 이후 각도를 달리하며 흐르는 역사에 질질 끌려갔다. 그렇다면 바로 그 무렵 조선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조선을 스쳐간 철포 일본이 철포를 얻은 지 12년이 지난 1555년 5월 21일, 비변사가 명종에게 보고했다. “왜인倭人 평장친平長親이 가지고 온 총통銃筒이 지극히 정교하고 제조한 화약 ..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6] 단옷날 멱 감는 여인들 훔쳐보는 동자승

조선일보 2021. 06. 11. 03:04 이달 14일은 우리의 잊힌 명절 단오다. 오늘은 널리 알려진 신윤복의 풍속화 단오풍정(端午風情)을 소개한다. 배경은 숲속의 너럭바위를 감싸는 실개천이 흐르고 주위는 숲으로 둘러싸여 만들어진 은밀하고 아늑한 공간이다. 기생으로 보이는 여인 몇이 대담하게 야외에서 낮 목욕을 하러 나왔다. 그러나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숨어서 목욕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는 동자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1/06/11/VQRZNLLAEBB33DMNQYWZFC5WWY/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6] 단옷날 멱 감는 여인들 훔쳐보는 동자승 [박상진의 우리그림 속 나무 읽기] [16] 단..

“작품 훼손한 아이 덕에 관심 커져… 고놈이 내겐 봉황이야”

조선일보 2021.06.12 03:00 [남정미 기자의 정말] 이건희가 사랑한 한국화의 거장 왼손 없는 無學의 화가 박대성 봄비 내리는 5월, 신경주역에 내렸다. 한국화 거장 박대성(76) 화백을 만나러 경북 경주시 삼릉으로 가는 길이었다. 얼마 전 그가 신문 사회면에 실렸다. 지난 3월 경주엑스포대공원 내 솔거미술관에서 열린 박 화백의 특별 기획전 ‘서화(書畵), 조응(調應)하다’의 작품 일부가 훼손됐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미술관에 왔다. 이들은 전시관 한가운데 있는 박 화백 작품 위에 눕기도 하고, 거꾸로 미끄럼틀을 타듯 내려오며 무릎으로 문지르기도 했다. 작품 속 일부 글자가 뭉개지고 훼손됐다. 이 작품은 통일신라 시대 최고 명필로 꼽혔던 김생의 글씨를 박 화백이 모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