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8) 홀로 있는 기녀의 속마음

바람아님 2015. 3. 22. 11:23

(출처-서울신문 2008-12-08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기생을 한 번 클로즈업 시켜 보자.그러면 신윤복의 ‘전모를 쓴 기생’(그림 1)처럼 된다.

이 여인이 기생인 것은 머리에 쓴 모자를 보고 알 수 있다.

이 둥글고 누런 모자를 ‘전모’라고 부른다.전모의 용도는 햇볕을 가리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은 피부 관리에 지극한 정성을 들인다.

오늘날 생산되는 엄청난 종류의 화장품은 기본적으로 여성의 피부를 어린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직사광선은 피부를 거칠게 하는 주범이다.전모는 곧 얼굴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 그림 1.혜원 신윤복의 ‘전모를 쓴 기생’.의복이나 

장신구까지도 간섭한 조선시대 신분제도 아래서도 

기생은 화려한 차림을 할 수 있었다.하지만 지붕이 

있는 가마만은 허락되지 않았기에 외출할 때 햇볕으로

부터 얼굴을 가리려면 이런 모자를 써야 했다.

●햇볕 가리는 ‘전모’ 기생 외엔 거의 안써


그런데 풍속화를 보면 꼭 기생만이 이 모자를 쓰고 다닐까?
조선시대 여성들은 남편이 당상관 이상의 벼슬을 하면,
그 아내는 외출 때 유옥교,곧 지붕이 있는 가마를 탈 수 있는 것이다.
앞서 기생이 단풍놀이를 떠나는 신윤복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그 기생은 뚜껑이 없는 가마,즉 가마바탕을 타고 있었다.
가마바탕은 햇볕을 차단하지 못한다.


 조선시대의 신분제도는 사람들의 의복이나 장신구까지도 간섭하고

 있었다.예컨대 상민 부녀자는 비단옷에다 금은주옥으로 만든 

장신구로 자신을 치장할 수 없었다.그것이 법이었다.기생만은 
이 제한에서 예외여서 사치스런 옷과 장신구로 자신을 꾸밀 수 
있었다.하지만 기생에게 유옥교만은 허락되지 않았다.이 때문에 
외출할 때 햇볕으로부터 얼굴을 가리기 위한 도구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곧 전모가 그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사실 옛 풍속화를 보면 
기생 외에는 전모를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 물론 의녀도 전모를 
쓰지만,의녀가 곧 기생이었으니,그게 그거다.


 이 기생이 전모 아래 쓴 것은,가리마다.이번 기회에 가리마에 대해 
좀 더 소상히 알아보자.유득공은 ‘경도잡지’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의원,혜민서에는 의녀가 있다.또 공조와 상의원에는 침선비가 
있다.모두 관동 지방과 삼남(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서 뽑아 올린 
기생들이다.
잔치가 있을 때는 이들을 불러다가 노래하고 춤추게 
한다.내의원 의녀는 검은 비단의 가리마를 머리에 쓰고 나머지는 
검은 베의 가리를 쓴다.가리마는 우리나라 말로 하자면 ‘가리는 
물건’이다.그 모양은 편지봉투처럼 생겨서 머리를 덮을 수 있다.”


 가리마는 편지봉투처럼 생겨 머리를 덮을 수 있다고 했으니,

아마도 이것은 기생의 가발,곧 가체(加髢, 다리머리)를 덮어서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재미있는 것은 원래 내의원의 의녀는 가리마를 

비단으로 만들게 했으니, 내의원 기녀를 옥당기생이라 해서 가장 높은 

축으로 친 사정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그림을 보자.‘전모를 쓴 기생’에서 기생이 입은 저고리는 소매의 끝동만 흰 색이고 나머지 동정과 깃,

고름은 모두 자줏빛 천으로 댄 반회장 차림이다.치마를 올려서 끈으로 질끈 묶어 바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신발은 붉은 가죽신이다.다른 유별난 장신구는 없지만 젊고 무언가 새치름한 표정이 사람의 시선을 끈다.

 이 그림은 범상해 보이지만,당시의 맥락으로는 결코 범상하지 않다.배경을 일체 없애서 여성만 도드라지게 만들었는데,

이렇게 여성의 표정까지 잡아내면서 여성의 모습을 클로즈업 하는 것은 전에 없던 것이다.그림 오른쪽에 ‘전인미발가위기

(前人未發可謂奇)’라 적혀 있는데,‘예전 사람들이 그린 적이 없는 것을 그렸으니,기이하게 여길 만하다.’는 뜻이다.

한국 회화의 역사에서 여성을 전면에 클로즈업 시키는 것,그리고 그 여성이 기녀라는 사실은 놀라운 사건이다.


●신분제에 의해 강요된 신신한 삶


▲ 그림2. 혜원 신윤복의 ‘연못가의 기생’.조용한 한낮 

수수한 옷차림의 기생이 생황을 한바탕 불고나서는 

장죽을 문 채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다

역시 신윤복의 작품인 그림(2) ‘연못가의 기생’을 보자.

그림의 아래쪽은 연못이다.연잎이 너푼너푼 하고 활짝 핀 

연꽃 한 송이,그리고 그림의 중앙 부분에는 아직 봉우리로 

있는 연꽃 둘이 있다.연못이 연못인 것은 연꽃이 있어서 

연못이다.연꽃이 없어도 연못이라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정약용은 ‘아언각비’서 비판했지만,

이 그림의 연못은 연꽃이 있는 명실상부한 연못이다.

여자는 마루 끝에 홀로 앉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무엇인가 주시하고 있다.조용한 한낮이다.

여자의 옷차림은 수수하다.그림(1)의 기생처럼 외출 중이 

아니기에 수수한 차림으로 있는 것이다.여자는 왼손에는 

장죽을,오른손에는 생황을 쥐고 있다.

문득 찾는 이 없는 조용한 한낮에 무료하여 생황을 꺼내 

한바탕 불었다.여자의 왼손 바로 위에 약간 튀어나오게 

그린 것이 생황의 취구(吹口)다.생황을 불고 나니,

담배 생각이 난다.하여,장죽을 물었던 것이다.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기생은 

찾아오는 손님이 없는 날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냈을까?

기생은 한가로울 때가 있었을 것인가?한가하다면 무엇을 

하는가?또 기생은 평소 자신의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이런 의문이 꼬리를 물지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아직 얻지 못했다.정말이지 장죽으로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내뱉은 뒤 저 기생은 어떤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 것일까?


 혹 그것은 자신에게 강요된 직업에 대한 싫증이 아닐까?

기생이란 직업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신분제에 의해 강제된 것이다.

기생의 업은 남자를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니,기생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이 아니다.

기생은 오직 강제에 의해 타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살아야 하는 타율적 존재다.

흔히 기생이라 하면 아름답고 호사스럽고 잘 생긴 남성과의 로맨스를 떠올리지만,그것은 현대인의 생각,

특히 남자의 생각일 뿐이다.기생은 어떤 한 남자와 가정을 꾸리고 살 수 없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져야 행복하다는 보장은 없지만,일반적으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어떤 남자와도 영원히 삶을 함께 할 수 없는 데서 오는 괴로움은 엄청나게 컸다.

기생의 삶은 실로 신산(辛酸)했던 것이다.


●기생의 내면 엿볼 수 있는 가사 ‘청루별곡’


 기생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청루별곡(靑樓別曲)’이란 가사가 있다.

청루는 기방이니,곧 기방 기생의 심사를 노래한 것이다.일부분을 읽어보자.

“이팔청춘 이 내 몸이 나비 눈에 꽃이로다/ 한궁(漢宮)에 비연(飛燕)이오,초대(楚臺)의 신녀(神女)로다/ 

함양(咸陽)의 유협객과 오릉(五陵)의 귀공자로/ 가무를 수작하니,천금이 일소(一笑)로다.”

여자는 자신을 한나라와 초나라의 전설적인 미인에 견주며 협객과 귀공자와 어울려 놀았던 세월을 회고한다.

그러던 중 사랑하는 정인(情人)이 생긴다.

“마음 안에 풍류랑을 황혼 가약 굳이 맺고/ 연리지(連理枝)에 천년 기약 운우몽(雲雨夢)이 잦았어라/

은하수 오작교에 견우랑이 건너는 듯/ 앵무배에 자하주를 월하에 흘려 부어/

금루의(金縷衣) 한곡조로 나 잡고 님 권하니/ 부용장(芙蓉帳) 비취금(翡翠衾)에 봄도 깊고 밤도 짧다.”

봄날 정인과 함께 보내는 밤은 짧기만 하다.사랑은 깊어져서 용천검 같은 날카로운 보검으로도 끊을 수 없고,

시뻘건 화로불로도 태울 수가 없다.해서 

“공명도 허사이오,부귀도 꿈밖이라/ 굶고 <먹고,먹고 굶고,떠나 살지 마쟀더니.”라고 

하면서 세상의 부귀공명을 모두 초개처럼 여기고 굶든지 먹든지 오직 헤어지지 말자고 약속한다.

하지만 조물주가 시기를 하는지 귀신이 장난을 치는지,

“금석 같이 굳은 맹세,구름 같이 흩어진다.”남자는 떠나고 소식이 영원히 끊어진다.

이후 ‘청루별곡’은 남자를 기다리지만,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여성의 고통을 길게 노래한다.

“보고지고 님의 거동 듣고지고 님의 소리/ 전생에 무삼 죄로 우리 양인 생겨나서/

천리에 걸어두고 주야상사(晝夜相思) 그리는고?/ 박명(薄命)한 이내 인생 이별할 제 왜 살았노?”

하지만 한 번 떠난 정인은 돌아오지 않고 여자는 

“금생에 그리던 님을 후생에나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청루별곡’과 비슷한 내용의 가사는 여럿 전한다.

작품이 그리고 있는 기생의 삶과 내면이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늘 ‘연못가의 기생’을 볼 때마다 홀로 있는 기생의 속생각이 궁금했고,

또 ‘청루별곡’ 기생의 하소연이 떠오르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