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2.05.22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천하에는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다. 하나는 시비(是非), 즉 옳고 그름의 저울이고, 하나는 이해(利害),
곧 이로움과 해로움의 저울이다.
이 두 가지 큰 저울에서 네 가지 큰 등급이 생겨난다.
옳은 것을 지켜 이로움을 얻는 것이 가장 으뜸이다.
그 다음은 옳은 것을 지키다가 해로움을 입는 것이다.
그 다음은 그릇됨을 따라가서 이로움을 얻는 것이다.
가장 낮은 것은 그릇됨을 따르다가 해로움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시비(是非)의 축과 이해(利害)의 축이 만나 네 가지 경우를 낳는다.
시비(是非)의 축과 이해(利害)의 축이 만나 네 가지 경우를 낳는다.
첫 번째는 시이리(是而利)다. 좋은 일을 했는데 결과도 이롭다. 더 바랄 것이 없다.
두 번째는 시이해(是而害)다. 옳은 일을 하고 손해만 본 경우다.
세 번째는 비이리(非而利)다. 나쁜 짓 해서 이득을 보는 것이다. 수단이 조금 잘못되어도 결과만 좋으면 좋은 게 아닌가?
네 번째는 비이해(非而害)다. 나쁜 짓 하다가 손해를 본 경우다.
첫 번째는 드물고 두 번째는 싫어서, 세 번째라도 하려다가 꼭 네 번째가 되고 마는 것이 세상 일이다.
첫 번째는 드물고 두 번째는 싫어서, 세 번째라도 하려다가 꼭 네 번째가 되고 마는 것이 세상 일이다.
질서를 지키면 좋으련만, 아침마다 얌체처럼 길 끝에서 끼어들기하는 차를 볼 때마다 줄서서 기다린 나는 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만 손해 볼 수 없어 나도 끼어들기를 시작한다. 그러다가 교통경찰의 단속에 걸린다. 교통 체증은 이래저래 더
심해져서 결국 모두가 손해를 본다.
문제는 늘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사이에서 생긴다.
문제는 늘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사이에서 생긴다.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옳은 길을 가야 하는가? 이익을 위해 시비쯤은 잠깐 외면해도 좋은가?
두 번째와 세 번째가 부딪칠 때 세상은 늘 두 번째를 바보로 비웃고 세 번째를 현명하다고 칭찬한다.
교육 현장도 마찬가지다. 성적만 높으면 인간성은 나빠도 괜찮다.
대학도 취업률이 중요하지 인성 교육은 늘 뒷전이다. 결과가 좋으면 수단은 문제삼지 않는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하지만 과정과 절차가 잘못되면 당장 결과가 좋아도 오래가지 못한다.
거쳐야 할 단계를 건너뛰면 성과만능주의에 빠지고, 승자독식(勝者獨食)의 세상이 되고 만다.
두 기준이 부딪칠 때 시비의 잣대를 들이대는 사회라야 건강하다.
그런 확신을 개인의 도덕성에 내맡길 수는 없다.
공정한 룰과 시스템으로 보장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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