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안아드려도 될까요

바람아님 2015. 4. 7. 11:00

(출처-조선일보 2015.04.07 손숙·배우)


	손숙씨 사진

"남 일이라고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지난주에 끝난 연극 '3월의 눈'에서 내가 연기했던 이순 할머니가 영감님에게 쏘아붙이는 대사다. 

공연 막바지에 딸아이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오늘 아침 운전하고 오는데 꽃들이 막 여기저기 피었어요. 

느닷없이 세월호 애들 생각이 나서 막 눈물이 나더라고요. 

에고, 부모들은 저 꽃 보며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꼬….'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떻게 그렇게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을까? 이제 겨우 1년이 지났을 뿐인데. 

그때 함께 울었던 우리는 각자 일상을 살고 웃으면서 그 일은 먼 지나간 일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남들이야 며칠이면 그 기막힌 일들도 잊힌 일이 되겠지만 그 부모들은 그 시간을 어떻게 버티면서 살아왔을까.

심란했던 그날 저녁, 공연이 끝난 뒤 분장실로 몇 명이 찾아왔다. 

팬들인가 보다 생각하고 분장을 지우다 말고 나갔는데 

모두 눈가가 벌겋게 부어 있었고 어떤 분들은 날 보더니 다시 울기 시작했다. 

"세월호에 아이 잃은 엄마들이세요." 

그분들과 함께 온 신경정신과 박사의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심리 치료의 일환으로 연극을 보러 온 것 같았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하얘졌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한 번씩 안아드리면 안 될까요?" 주변의 권고에 정신을 차리고 앞의 엄마를 안았다. 

나도 그분도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내 품에 안긴 그 엄마의 뒷등이 앙상하게 뼈만 남은 느낌이다. 

다음 엄마도, 그다음 엄마도 그랬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그 엄마들 일년의 시간이 내 가슴에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나는 속으로 그 말만 되뇌면서 입술을 깨물어 눈물을 참았다. 

다른 걸 다 떠나서 그저 위로하고 사과하는 일조차 우리는 너무 인색했던 것이 아닐까. 

304명이면 304개의 삶의 얘기가 있고 304개의 고통이 존재한다. 

오는 16일은 그 일이 일어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안아주고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