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5-5-8
공무원연금 여야 합의가 무산된 가장 큰 이유는 야당이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을 40%에서 50%로 끌어올리자는 주장을 끼워 넣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국민연금은 노후(老後) 보장 기능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보완 작업이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전 국민의 이해가 걸린 사안을 느닷없이 공무원연금 문제에 끼워팔기하는 식으로 처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연금은 차후에 완전히 별도 절차를 통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렇게 된 이상 공무원연금법 개정은 기존 협상을 백지로 돌리고 원점(原點)에서 다시 출발하는 것이 옳다. 원래 정부안은 공무원연금의 보험료율과 지급액을 장기간에 걸쳐 점차 국민연금 수준으로 조정한 뒤 궁극엔 국민연금과 통합하자는 것이었다. 새로운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는 이런 장기 목표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연금은 40년을 부어야 생애 평균 급여의 40%를 받는다. 공무원은 33년만 부어도 62.7%를 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의 수익비(낸 보험료 대비 받는 액수 비율)는 1.2~1.5배인데, 공무원연금은 2~3배가 된다. 정년이 보장되고, 예산 사용과 규제의 권한을 행사하는 공무원들에게 국민이 세금으로 후한 연금까지 지원해줘야 한다면 지나친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공무원연금 논의는 최종적으로 국민연금과 통합한다는 목표로 국가 재정적으로 장기간 지속 가능하게 근본 구조 개혁을 시도해야 한다. 고위직 퇴직 공무원 가운데는 300만원, 400만원을 넘는 고액 연금을 받는 사람이 적지 않다. 80대(代), 90대 나이가 되면 각종 생활비 부담이 준다. 정부가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더 강화한다는 전제 아래 80대 이후 일정 연령대부터는 연금액이 차츰 줄어들도록 '연금 슬라이딩제(制)' 같은 아이디어도 도입해볼 필요가 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 때도 공무원연금 개혁을 시도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의 2000년 개혁은 '공무원연금 적자를 세금으로 보전'한다는 규정을 집어넣어 개악(改惡)이 됐고, 노무현 정부는 안(案)을 만들어놓고는 국회에 내지도 못했다. 이명박 정부 역시 10년 이상 재직자 연금은 한 푼도 삭감 못 하는 찔끔 개혁에 머물렀다. 이번에도 개혁 시늉만 낸다면 다음 정권에서 또 공무원연금 소동이 벌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이해 당사자인 공무원 단체의 협상 참여를 배제해야 한다. 공무원들 의견을 참고하되 결정은 공무원 단체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기준으로 내려야 한다. 이번마저 구조적 대(大)수술에 실패하면 결국 2000만명이 넘는 국민연금 가입자에게서 공무원연금을 해체하고 국민연금과 통합하라는 요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사설] 年金 개혁, 국회에만 떠맡기지 말고 대통령의 존재 드러내야
조선일보 2015-5-9
8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 여야가 마련했던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대한 반대 의견이 42%로, 찬성 31%보다 11%포인트 많았다. 여야 합의안을 그대로 밀고 가지 말라는 여론이 다수인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무작정 여야에 '개혁을 하라'고 하고 있고, 여당 내부는 '기존 합의 고수'와 '원점 재검토'로 의견이 갈라져 입씨름만 하고 있다.
공무원연금 제도를 고치려는 취지는 국민 세금으로 해마다 수조원의 적자를 메워주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 국가 재정을 건강하게 만들고 연금 빚을 미래 세대에게 넘겨주지 말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야는 6년 뒤면 적자 폭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해마다 10조원의 세금을 공무원연금에 퍼주는 안(案)을 만들었다. 이제는 청와대와 여당이 직접 이 잘못된 합의를 바로잡아야 할 때다. 이번 기회에 다수 국민의 이익에 맞는 방향으로 제대로 된 개혁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당은 '맹탕 개혁안'에 합의한 당사자다. 앞으로도 국회에서 야당을 상대해야 할 입장이다. 여당 지도부가 합의해 서명까지 했던 것을 과연 자기 손으로 뒤집을 것인지 의문스럽다. 공무원연금 개혁의 발동을 처음 건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하지만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실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여당 지도부에 몇 차례 국회 통과를 재촉하고, 야당에는 지난 3월 17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표를 만나 '5월 초 처리 시한을 지켜달라'고 당부한 것 정도이다. 공무원 노조 측을 직접 설득한 적도 없고, 공무원들을 상대로 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호소하지도 않았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개혁이 이뤄지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국회를 향해 자신이 생각하는 개혁의 최소한의 원칙과 기준을 제시한 적도 없다. 그런 박 대통령이 여야 협상 결과가 나오자 "개혁의 폭과 속도가 국민의 기대 수준에 못 미친다"고 평가했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일부까지 청와대를 향해 불만을 토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연금 개혁의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는 여도 야도 아니다. 140만명의 현·퇴직 공무원과 2113만 국민연금 가입자 등 거의 모든 국민이 직접적 당사자다. 대통령은 모든 공무원을 통솔하는 행정부 수장이자 5000만 국민의 대표다. 절대다수 국민의 이해가 걸린 사안에서 대통령이 합의해 오면 사인하겠다고 국회에 떠맡겨놓는 것은 책임 회피로 비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이제라도 심판대에서 내려와 여야 지도부와 이해 당사자들을 상대로 직접 설득하고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필요하면 공무원·국민에 직접 호소하고 밤샘 토론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이번에야말로 이 문제가 미래 세대를 향한 폭탄이 되지 않도록 제대로 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에게 '여기에 대통령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時事論壇 > 時流談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취재파일] '한국 외교'(外交)의 실종? 문제는 '내치'(內治) (0) | 2015.05.11 |
---|---|
정청래 ‘공갈’ 발언 논란…주승용 사퇴…유승희 ‘뜬금포’ 노래…‘봉숭아학당’? (0) | 2015.05.10 |
[박정훈 칼럼] '빵과 서커스'의 自殺 코스 (0) | 2015.05.08 |
전세계 역사학자들, 사과요구하는데..日 외신 "위안부는 한국이 해결해야 할 문제" (0) | 2015.05.07 |
[세상읽기] 일본은 왜 사죄하지 않나 (0) | 2015.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