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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일본 견제가 한국 외교 존재 이유인가

바람아님 2015. 5. 18. 09:48

[중앙일보] 입력 2015.05.18

문정인/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잔인한 5월. 요즘 한국 외교는 국내 정치의 동네북이다. 여야 할 것 없이 박근혜 정부 외교의 총체적 위기를 거론하며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퇴진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이유는 다양하다. ‘외교 전략의 부재’ ‘무모한 원칙 고수’ ‘무능과 안일한 정세 인식’ ‘아전인수와 자화자찬’…. 이러한 정치권의 비판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5월 6일자 중앙일보 조사에 따르면 전문가의 67.7%, 일반 국민의 47%가 한국 외교가 위기라고 평가했다. 누구랄 것 없이 박근혜 정부의 외교에 대해 혹독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뜻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동북아 정세가 급격히 소용돌이치고 있음에도 판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일 견제 외교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비판은 특히 후자에 주목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워싱턴을 방문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과거사를 희석시키고 ‘미·일 신밀월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아베 총리가 반둥회의 60주년을 맞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는 등 공세적 외교를 전개하자, 같은 시간 우리 대통령은 한가롭게 멀리 떨어진 남미를 순방하고 있다는 한탄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공정하지 못한 비판이다. 우리 외교부에 무슨 특출한 재주가 있어 일본 총리의 방미를 훼방하거나 미국과 일본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겠는가. 이러한 분위기는 단순히 일본이 로비에 능하고 워싱턴에 ‘국화파’로 불리는 친일 성향 세력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카고대학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최근 지적한 것처럼 미국은 전통적으로 한국보다 일본에 더 큰 비중을 두어온 게 사실 아닌가. 더욱이 우리 정부가 섣불리 두 나라 관계에 왈가왈부하고 나선다면 그 또한 큰 외교적 결례이기도 하다. 중국 문제도 다르지 않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역사적 정서보다 실리를 앞세워 아베를 만나겠다는데, 우리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놓고 보면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은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라는 윤병세 장관의 말은 틀린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한·미 동맹은 대북 억지를 위한 것이고 미·일 동맹은 대중 견제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일 정상의 만남 역시 우리가 주도적으로 개최하려는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라는 틀에서 보자면 나쁠 것이 없다. 무조건 이를 한국의 외교적 고립으로 치환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뜻이다.

 이 시기 우리의 선택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일본을 견제하고 고립시키기 위해 미국과 중국에 구걸 외교라도 해야 옳을까. 이런 식의 국내적 압박이 거세질수록 우리 외교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일본 견제가 외교의 목표가 될 수도 없지만, 돼서도 안 된다. 자충수에 지나지 않는 패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당면한 최대 위기는 누가 봐도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의 악화다. 이러한 사활적 문제에서 아무런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위기의 본질이지만, 정부는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비판하려면 정치권이 이렇듯 위기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쓴소리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남북관계를 어떻게든 진전시킬 기회라던 5월. 통일부는 관계개선의 물꼬를 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6·15 공동선언 15주년을 계기로 최소한 민간 부문의 교류라도 시작하고, 8월 분단 70주년을 맞아 더 큰 규모의 남북 공동행사들을 개최해 신뢰 구축의 계기로 삼겠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간 기대를 모았던 우리 정부의 해결법, 이른바 ‘코리안 포뮬러’의 핵심은 북한을 제외한 5개국 대표 협의를 통해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하고 북핵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보자는 데 있다.

 통일부·외교부가 이렇듯 북한 문제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국가정보원이 느닷없이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의 처형에 대한 첩보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런 엇박자가 없다. 그러한 조치가 북한 지도자를 악마화하는 데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남북관계 개선에는 악재가 될 게 자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국익이라는 큰 틀에서 그 첩보의 정확성과 공개 시기의 적실성을 세심하게 따져 봐야 할 국회 정보위 위원장과 여야 간사들은 마치 국정원 대변인이나 된 것처럼 이를 언론에 중계하는 데 급급했다.

 이건 아니다. 본질을 회피하고 하기 쉬운 으름장만 늘어놓는 정치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정치권이 진정으로 한국의 외교안보를 고민한다면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옥석을 가려 정부에 대한 건설적 비판을 가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