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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새와 산업계 정글의 법칙

바람아님 2015. 6. 16. 09:40

[J플러스] 중앙일보 2015-06-11

도도새.jpg

도도새(Dodo Bird, 그림: 중앙포토). 한 번쯤 이 새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각종 문헌에 따르면 도도새는 23kg 정도 무게의 새로, 칠면조보다 크며 깃털은 청회색이었답니다. 인도양의 아름다운 섬나라이며 신혼여행 명소로도 유명한 모리셔스(Mauritius)에만 서식하던 이 새는 1681년에 멸종했습니다. 도도새라는 이름은 포르투갈어로 '어리석다'는 의미를 담고 있답니다. 그 이름처럼 어리석어 멸종한 걸까요?
 
이른바 '대항해시대'에 들어섰던 1505년. 포르투갈인들은 항해 도중 도도새가 살던 모리셔스를 최초로 발견하게 됩니다. 이들은 이 섬을 중간 경유지로 삼고 향료 무역에 나섰지요. 당시 도도새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기에 포르투갈인들이 다가가도 도망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세월 이 섬에서만 살면서 위협적인 맹수와 같은 상위 포식자를 만나본 적이 없었던 겁니다. 본래 모리셔스는 포유류가 살지 않는 섬이었습니다. 어찌나 평화로웠던지 이 새의 날개는 작고 쓸모없게 퇴화돼 날지 못하게 됐답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누군가로부터 도망칠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적어도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죠. 숫제 나무가 아닌 땅에 둥지를 틀고, 나무에서 떨어진 과일을 먹으면서 살았답니다.
 
도도새의 비극은 사람들에게 그 존재가 발견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신선한 고기를 찾던 포르투갈인 선원들에게 도도새는 안성맞춤인 사냥감이었고, 곧 수많은 도도새가 사람 손에 죽어갔습니다. 포르투갈인들은 날지 못하고 천진난만하게 사람 곁에 다가와 쉬운 먹잇감이 됐던 이 새를 '어리석다'고 여겼습니다. 이후 네덜란드인들이 모리셔스를 장악해 죄수들의 유형지로 활용했고, 돼지나 원숭이 같은 포유류를 데려와 섬 안에서 키웠습니다. 이들 포유류가 도도새의 알을 무더기로 먹어치우면서 도도새의 개체 수는 점점 줄어만 갔습니다. 도도새는 결국 사람들을 만난 지 200년도 안 돼 멸종하게 됩니다.
 
인류의 행패로 도도새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흔히 약육강식(弱肉閣食)을 정글의 법칙이라 하지요.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고 마침내는 약자 대신 강자만이 정글에서 살아남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험난한 정글로 은유하면 이러한 약육강식의 이치는 곧 우리 사회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겠죠. 아이러니하게도 도도새의 경우는 모리셔스에서 너무 오랜 세월 강자로 군림했기에 되레 멸종했습니다. 차라리 바퀴벌레나 개미처럼 약하고 사방에 위협적인 적들 투성이었다면 오늘날까지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겁니다. 생존에 통 위협을 느끼지 못하니 진화란 이름의 발전 가능성을 허공에 날린 채, 정작 스스로는 날지 못하는 새로 전락했던 겁니다.
 
국내외 산업계 현장을 취재하면서도 도도새의 몰락과 비슷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영원히 잘나갈 것 같던 일본 전자업체 소니(Sony)는 세계 업계 부동의 1위에서 내려온 지 오래입니다. 역시 한때 세계 1위로 '강소국' 핀란드의 명성을 드높였던 휴대폰 제조업체 노키아(Nokia)도 몰락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스마트폰과 같은 신기술을 과소평가하고 스스로를 과신한 결과였습니다. 시대 변화에 둔감한 채 소비자 권익 보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아무리 강자라도 이렇게 됩니다. 도도새야 운이 참 나빴다고 치부할지언정, 소니나 노키아까지 그렇게 봐주긴 어려울 듯싶습니다. 어쩌면 '어리석다'는 표현이 도도새 대신 이쪽에 더 들어맞는지도 모를 일이겠죠. 오랜 기간 국내에서 시장 점유율 1위로 잘나갔지만, 원가 절감 등을 이유로 품질 개선은 뒷전으로 미뤘던 어떤 기업이 있습니다. 최근 판매 부진과 주가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기업을 보며 도도새 이야기와 소니, 노키아의 사례가 생각났습니다. 스스로 발전 가능성을 내팽개친 게으른 강자는 산업계 정글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걸 이 기업이 유념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