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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6·25와 연평해전 이후 우리 안보의식 얼마나 달라졌나

바람아님 2015. 6. 25. 10:10

동아일보 2015-6-25

 

6·25 발발 65주년인 오늘 국회 의원회관에서 여야 의원들이 영화 ‘연평해전’ 시사회를 갖는다. 한일 월드컵의 열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2002년 6월 2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의 기습공격에 맞서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가 죽음으로 NLL을 지켜낸 제2연평해전의 의미를 일깨우는 영화다. 고속정의 정장인 윤영하 소령 등 6명이 장렬히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다음 날 월드컵 결승전을 보러 일본으로 출국해 희생자 부모들은 “우리는 대통령이 버린 군인의 부모”라며 가슴을 쳤다.

 

 

시사회를 공동 주최한 새정치민주연합 신기남 의원이 “안보 문제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희생된 장병들의 뜻을 기리고 추모하는 데 여야가 따로 없다”고 한 말에 공감한다. 그러나 햇볕정책을 추구한 김대중 정부가 당시 군에 확전을 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려 참수리 357호는 선체(船體)로 북 경비정을 ‘밀어내기’ 차단기동만 하다 북의 포격을 당했다. 노무현 정부 때까지도 ‘서해교전’으로 불렸던 이 해전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NLL의 의미가 재평가되면서 비로소 제2연평해전이라는 정명(正名)을 찾을 수 있었다.

 

북의 도발 징후가 있었음에도 군의 오판과 정부의 무른 대응으로 희생을 키웠다는 점에서 연평해전은 6·25전쟁의 쓰라린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1950년 그때도 우리는 북의 남침 동향을 미리 파악하고도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 제2연평해전 직후에도 여야는 의장단 및 상임위원장 배분을 둘러싼 ‘밥그릇 다툼’ 때문에 즉각 국회를 열지 못했던 전력이 있다.

 

북의 적화통일 전략은 그대로인데 6·25 당시 우리 지도자들의 안일과 무능, 군에 대한 불신, 그리고 해이한 안보의식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걱정스럽다. 어제 서울시가 서울 시민 3039명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안보의식 및 을지연습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이 최대 안보 위협 요인으로 꼽은 것이 정치 불안정과 국론 분열(50.9%)이다. 북한 핵무기 개발(20.6%)이나 중국과 일본의 군사력 증강(11.1%)보다 정치권을 더 불안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남북의 증오와 적대를 청산하고 평화통일을 이루기 위해선 대한민국의 번영을 가능케 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더욱 튼튼히 해야 한다. 화전(和戰) 양면전술을 버리지 않은 북이 무력통일을 시도할 가능성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때까지 한미동맹을 공고히 유지하되 스스로의 국방력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호국 영령들은 지금 정부와 군이 북의 침략에 단호히 대처할 각오와 태세가 돼 있는지, 또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들을 잊지 않고 있는지 묻고 있다.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며 늘 깨어 있어야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사설] 6·25 65돌..대한민국은 반성문을 써야 한다

세계일보 2015-6-24

 

제2연평해전을 다룬 영화 '연평해전'이 어제 전국 극장에서 막이 올랐다. 6·25전쟁 기념일인 오늘은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시사회가 열린다. 영화는 2002년 6월2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 일어난 남북 간 군사 충돌을 재연했다. 당시 기습 남침한 북한 경비정을 격퇴하는 과정에서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에 타고 있던 장병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청춘을 나라에 바친 6용사의 호국혼이 13년 만에 영화로 부활한 것이다.

영화가 나오기까지에는 7년의 제작기간이 걸렸다. 투자배급사의 변경으로 제작이 중단돼 배우들이 하차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제작비를 모으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도 세 차례나 실시됐다. 온 가족이 함께 돼지저금통을 털었고 농부, 주부, 학생들이 세대와 계층을 초월해 성금을 보냈다. 7000여명의 눈물겨운 성원이 없었다면 영화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제2연평해전 당시의 현실은 영화의 참혹한 전투 장면보다 더 비극적이었다. 서해 바다에 젊은 장병들이 산화할 무렵, 국민은 2002년 월드컵 축제에 빠져 있었다. 정부는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기조차 거부했다. 연평해전에서 아들을 잃은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는 영화를 본 뒤 "우리는 나라가 버린 군인의 부모였다"고 땅을 쳤다.

작금의 안보현실은 13년이 흘렀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최근 한 취업포털이 내놓은 인터넷 설문조사 내용은 충격적이다. 20대에서 6·25전쟁이 남침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54.3%에 불과했다. 젊은 층만 탓할 일도 아니다. 국가안보를 책임진 군의 안보의식은 최악의 상황이다. 시험조작서를 위조해 엉터리 무기를 사들이고 군사기밀까지 팔아먹는다. 참모총장을 지낸 인사에서 말단까지 부패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런 안보의식으로 어떻게 나라를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이 꼬리를 문다.

오늘은 6·25전쟁이 터진 지 65년이 되는 날이다.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것은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었다. 화염병을 들고 탱크 밑으로 뛰어든 어린 병사와 해외에서 귀국한 학도병들의 숭고한 희생도 있었다. 누군가의 아들과 아버지가 그렇게 생명을 바친 덕분이다.

영화 연평해전을 만든 김학순 감독은 "기억하자. 이것은 헌시다!"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단순한 헌시로만 받아들여선 안 된다. 6·25 앞에 대한민국은 처절한 반성문을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