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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배신의 정치’, 국민이 대통령과 국회에 할 말이다

바람아님 2015. 6. 26. 08:53

동아일보 2015-06-26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어제 거부권을 행사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보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를 넘어, 국회와 여야의 현실 정치에 대해 강한 거부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만약 대통령에게 국회 해산권이 있었다면 국회 해산을 요구했을 것이라는 가정이 성립될 만큼 강도 높은 비판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반발했다. 메르스 사태로 가뜩이나 나라가 뒤숭숭한 판에 대통령과 국회가 정면 대립하면서 향후 정국은 격랑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다.

박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의 이유에 대해 “국회법 개정안이 정부의 입법권과 사법부의 심사권을 침해하고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해 위헌 소지가 크다”고 밝혔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처리하면서 야당의 요구에 따라 여야가 국회법 개정안을 연계 처리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당초의 개정안이 위헌 논란을 초래한 이상 여야가 기왕에 다시 수정하기로 했으면 위헌성을 완전히 불식시킬 수 있도록 고치는 것이 옳았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이 점에서 타당성을 지닌다.

어제 박 대통령은 “정치의 문제가 경제와 민생을 위협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데도 정치권에서는 정부 비판과 반목만을 거듭하고 있고, 국회가 꼭 필요한 법안을 당리당략으로 묶어 놓고 있으면서 본인들이 추구하는 당략적인 것을 빅딜 하고 통과시키고 있다”고 여야를 같이 공격했다.

그는 새누리당에 대해 “정부를 도와줄 수 있는 여당에서조차 (민생 법안을) 관철하지 못했다” “여당의 원내 사령탑도 정부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협조를 했는지 의문이 간다”고 비판했다. 원내 사령탑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겨냥한 말이다. 박 대통령은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며 국민의 ‘선거혁명’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여론을 지렛대로 삼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요즘 국회 행태를 생각하면 박 대통령의 인식에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야당은 국회선진화법을 무기로 사사건건 정부 및 여당의 법안 처리를 발목잡고 있고, 여당은 160석의 다수 의석을 갖고도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무기력하게 끌려다니고 있다. 야당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특별법처럼 자신들이 중시하는 사안은 다른 법안과의 연계 처리를 통해 끝내 관철하면서도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 등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 살리기 관련 법안은 ‘가짜 민생’이라는 딱지를 붙여 논의조차 거부하고 있다.

야당이 주도하는 입법부의 독주로 국정이 마비 상태나 다름없으니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야당이 국민들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정권 성공을 막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여당 역시 국회의원들의 특혜나 권한 확대 등 집단 이기주의를 도모하는 데는 야당과 손발이 척척 맞고 있다. 국회가 국민을 등지는 ‘배신의 정치’를 하고 있다는 박 대통령의 비판에 여야는 과연 당당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발언은 너무 거칠고 직설적이다. 박 대통령 특유의 ‘오기 정치’라는 평이 나올 정도다. 일각에서는 통쾌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런 식으로는 문제 해결은커녕 더 꼬이게 만들기 십상이다. 국회가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는 데는 박 대통령의 책임도 없지 않다. 정부 정책을 펴면서 여야를 적극적으로 설득해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도 대통령의 중요한 역할이다. 세월호 사고와 메르스 사태에서 나타나듯이 정부의 늑장 대응으로 사태를 더 키우고, 인사 실책과 소통 부족으로 소중한 국정 에너지를 허비했으며 국민의 불신을 자초했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잘못을 겸허하게 돌아보지 못한 것에 국민은 배신당한 느낌이다.

박 대통령의 작심 발언은 지금과 같은 국회 상황으로는 자신이 역점을 두고 있는 노동 공공 금융 교육 등 4대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 경제 살리기 같은 국정 과제들을 추진하기가 어렵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임기 수행을 위해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국회, 나아가 여야가 서로 맞서는 극한 대결이 장기화한다면 정치와 국정의 마비는 불 보듯 뻔하다.

정치로 꼬인 것은 정치로 풀어야 한다. 우선 국회법 개정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대통령과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개정안을 재의에 부치지 않고 자동 폐기시키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야당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생산적인 정치, 원활한 국회 운영을 위해 대승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자주 만나 흉금을 터놓고 대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박 대통령도 자신의 실책에 대해 진솔하게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사설] 與野에 날 선 비판 퍼부은 대통령, 국회만 탓할 자격 있나

조선일보 2015-6-26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위헌(違憲) 논란에 휘말린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여야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모두(冒頭) 발언을 통해 정치권에 대해 갖고 있던 불만을 그대로 쏟아냈다. 특히 유승민 원내대표를 지목해 "정부를 도와줄 수 있는 여당에서조차 그것(민생법안)을 관철시키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여당의 원내사령탑도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경제 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치는 국민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지 자기의 정치 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정치를)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여당 원내대표를 '자기의 정치 철학과 정치 논리에 정치를 이용하는 사람'으로 몰아세우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과거 정부에서도 통과시키지 못한 개정안을 (이번에) 다시 시도하는 저의(底意)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취임 후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처음이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모두 73차례 있었다. 새누리당은 국회법 개정안을 다시 표결에 부치지 않고 자동 폐기시키기로 의견을 모았고, 유 원내대표는 자신을 향한 사퇴 요구에 대해 "더 잘하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국회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의 핵심은 국회가 만든 법의 취지를 넘어서는 행정부의 시행령과 규칙을 직접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위헌인지 여부를 놓고 법조계와 헌법 학자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맞서고 있다. 국회도 지난 10여년 이상 비슷한 개정안을 준비했다가 위헌 논란 때문에 뜻을 접곤 했다. 그런데 지난달 공무원연금 개편안 관련 여야 협상 과정에서 야당이 세월호진상조사특위의 과장 한 사람을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으로 바꾸겠다며 국회법 개정안을 연금 개편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공무원연금 개정안 처리 시한에 쫓기던 여당이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하룻밤 사이 이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런 점에서 야당이 이번 논란의 1차적 원인 제공자다.


그러나 위헌 논란을 뻔히 알면서도 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위헌이 아니다'라고 우겨온 여당 지도부 역시 책임을 면키 어렵다. 이 법에 찬성표를 던졌던 새누리당 의원들은 슬그머니 법안을 폐기시킬 게 아니라 국민 앞에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사과해야 한다. 법안 문구 중 국회의 '요구'를 '요청'으로 한 글자 바꾼 것을 중재안이라고 주장한 정의화 국회의장 역시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는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게 됐다.


위헌 논란이 제기된 법안을 대통령에게 받아들이라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이 정부 들어서도 '김영란 법(法)'으로 알려진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안'을 비롯해 위헌 시비에 휘말린 몇몇 법안이 그대로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 법들은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개혁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어려운 공무원연금 개편안 역시 거부권 행사 주장이 나왔었다. 국회법 개정안이 이 법안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메르스 위기 앞에서 국회와 정면 충돌하면서 정국(政局)을 파행으로 이끌어 갈 만큼 긴박한 사안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날 나온 대통령의 정치권 비판은 무려 200자 원고지 20.7매에 달했다. 대통령의 목소리도 어느 때보다 격앙돼 있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과 관광진흥법 등을 문제 삼았다. 경제활성화 법안들이 국회만 가면 발이 묶여서 정부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야당은 부동산 관련법 등 대부분을 통과시켰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국민의 눈에는 국회가 국정의 발목이나 잡는 존재로 비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여야가 대통령의 '날 선 비판'을 자초한 측면이 없지는 않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과연 이런 여야를 설득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해 왔는가 하는 점이다. 대통령은 여당을 향해선 숙제를 내주듯 법안 처리만을 일방적으로 주문했고, 야당과의 대화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청와대와 여야 대화가 절실한 상황인데도 대통령은 한 달 넘게 대화 창구인 청와대 정무수석을 임명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은 이날 아예 "국민이 배신의 정치를 선거에서 심판해 달라"는 말까지 했다. 이런 거칠고 공격적인 언어들을 접하고 여당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야당은 '국민과 국회를 향해 선전포고를 한 것'이라며 메르스 관련 법 처리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겠다고 나섰다.


대통령은 이날 정치권 전체를 상대로 타협이나 대화보다는 공격과 대결을 선택했다.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국정 차질로 연결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임기가 절반 이상 남아 있는 상황에서 여야를 동시에 자극해놓고 뒷감당을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당은 총선·대선이 다가오면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고, 대통령과 여당 사이의 균열을 목격한 야당의 공세는 더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이제 정치권 비판을 넘어서 앞으로 대통령과 여야,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를 어떻게 꾸려갈 것이며, 주요 국정 현안은 또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