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5.06.30
이철호/논설실장
이는 중국 공산당의 고도의 전략이기도 하다. 중국은 그동안 높은 저축률로 투자재원을 마련해 고도성장을 해왔다. 고금리를 유지해온 비밀이다. 그 결과 중국의 총부채(기업+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230%로 위험한 수준이다.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방향을 확 틀었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경제성장률 7% 유지와 내수 소비 확대를 정책 노선으로 삼았다. 저축을 줄이고 소비를 자극하려면 저금리가 우선이다. 1년 반 동안 네 차례나 기준금리를 내리고 돈을 넉넉히 풀었다. 중국 콜금리는 2% 밑으로 떨어졌다.
리커창은 동시에 부동산은 틀어막고 주식시장으로 돈줄을 돌렸다. 기업엔 은행 대출보다 주식을 찍어 증시에서 투자재원을 조달하도록 했다. 이른바 ‘부채의 자본화’다. 벤처의 증시 상장을 유도해 ‘대중 창업’도 부추겼다. 리커창은 돈을 증시로 몰아넣기 위해 빚을 내 주식을 사는 신용거래를 확충하고 해외 투자자에게도 문턱을 낮춰줬다. 중국 증시에 ‘돈 놓고 돈 먹는’ 엄청난 판이 벌어졌다.
상하이 증시는 지난 2주 연속 6~7%씩 급락하는 ‘검은 금요일’을 맞았다. 어제도 3%가 넘게 주저앉았다. 막대한 기업공개 물량과 350조원의 신용거래 폭탄에 겁먹은 때문이다. 외부에선 “중국의 거품이 붕괴되고 있다”고 호들갑을 떤다. “인위적인 유동성 장세”라며 “펀더멘털과 비교하면 불편한 수준의 고평가”라는 분석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동안 급등장을 떠올리면 ‘건강한 조정’일지 모른다.
중국 증시의 변동성보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바로 엄청나게 팽창한 시장 규모다. 최근 상하이 증시의 거래금액은 뉴욕 증시의 두 배를 웃돌았다. 서울 증시의 30배, 도쿄 증시의 10배나 된다. 중국 돌풍으로 세계 금융시장의 지각 변동도 한창이다. 모건스탠리는 언제 상하이 증시를 MSCI지수에 편입시킬지 고민이다. 골드만삭스는 중국 증시만 맡는 본부를 따로 만들고 쪼그라든 서울 데스크는 일본 쪽에 붙여버렸다. JP모건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다.
서울 금융시장은 찬밥 신세다. 최근 홍콩에 다녀온 골드만삭스 권구훈 전무는 “요즘 국제금융회사들은 한국계 MBA 출신은 외면하고 중국 토종의 투자맨들은 거액의 몸값으로 스카우트 한다”고 전했다. 한국 금융의 일자리부터 씨가 마르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국민연금은 484조원을 굴리는 세계 3위 기관투자가다. 세계적 큰손들의 구애를 받는다. 하지만 요즘 미국·유럽을 출발한 큰손들은 도쿄→상하이→홍콩→싱가포르를 거쳐 돌아가기 일쑤다. 서울과 국민연금을 건너뛰는 것이다. 여기에다 국민연금은 더 머나먼 전주로 내려가야 할 판이다.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은 제조대국→무역 대국→군사대국→금융대국의 수순을 밟았다. 지금 중국은 한꺼번에 이 모두를 움켜쥐려는 분위기다. 그 옆의 서울 금융시장은 판잣집 신세다. 이미 상하이 증시에서 거액을 그러모은 중국은 한국의 알짜기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한국의 엔터테인먼트·게임 업체부터 탐욕스럽게 먹어 치우는 중이다.
임지원 JP모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올해 한국 경제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보다 중국 증시가 더 중요한 변수”라고 지적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아시아 금융허브’도 물 건너간 지 오래다. 이러다 중국의 금융 식민지가 안 된다는 보장이 없다. 골드먼삭스의 권 전무는 홍콩의 한국 금융맨들끼리 주고받는 귓속말을 전해 주었다. “10년 뒤에 우리가 중국 사람 발 마사지를 해주는 게 아니냐….”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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