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5-6-19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던 고갱이 자주 찾았던 곳은 시골과 오지였다. 그가 남태평양 타히티로 떠나기 전 발견한 곳이 퐁타벤이었다. 사실 수년 전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서 고갱의 타히티 그림을 보고 좀 실망했었다. 생각보다 훨씬 어둡고 탁한 화면, 아주 볼품없이 납작한 평면적인 화면 때문이었다. 그러나 퐁타벤에서 그린 고갱의 초기 그림은 달랐다. 아마도 인상주의적인 세심한 붓 터치와 풍부한 색채가 감각적으로 훨씬 더 매혹적이라고나 할까.
폴 고갱, 첫 꽃, 캔버스에 오일, 1888년 |
퐁타벤은 ‘브르타뉴의 베니스’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항구도시다. 가난과 도시생활에서 구역질을 느낀 고갱은 1886년 퐁타벤에 도착한다. 그는 글로아넥 하숙집에 여장을 풀며 젊은 화가이자 평론가인 에밀 베르나르를 만나 퐁타벤파를 탄생시킨다. 울창한 떡갈나무와 너도밤나무 숲 사이로 고요히 흐르는 강물, 그 맑은 강물에 반사된 햇살, 구름, 나무 등은 화가들로 하여금 색채의 한계를 벗어나도록 고무했다. 고갱은 1888년 반 고흐의 초대로 아를로 떠나기 전까지 이곳에 머문다. 그리고 그는 자주 퐁타벤으로 돌아오곤 했다.
특히 퐁타벤에서의 고갱의 색채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세계에 대한 기대와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 요즘 고갱의 색채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사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별것 아닌 아주 사소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한 자락의 흐린 연둣빛 색채, 가느다랗고 어설픈 인간적 붓질 하나에도 매료된다.
로스코의 색채보다 고갱의 색채가 필요한 나이가 된 건가?! 나이 들수록 섬세함에 대한 취향이 점점 유치하고 병적이 되어간다. 괜찮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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