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經濟(內,外)

[데스크에서] 메르켈, 라가르드, 옐런

바람아님 2015. 7. 22. 08:00

(출처-조선일보 2015.07.22 최원석 국제부 차장)


최원석 국제부 차장 사진메르켈 독일 총리,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의 최근 행보를 보면 그리스 사태가 경제적이기 이전에 정치적 사건임을 깨닫게 된다.

메르켈 총리는 유럽연합(EU)의 최대 경제 강국이자 수호자로서 정공법을 택했다. 부채 탕감은 없다. 긴축과 경제 개혁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독일은 플랜B(사실 독일이 생각한 최선책일지도 모른다)까지 만들었다. 그리스를 유로 통화권에서 잠시 빼내는 방법이었다. 일리가 있다. 그리스가 일단 밖으로 물건을 많이 팔아 돈을 벌어야 세수를 늘리고 세출을 줄여서 회생하는 방법도 효과가 있다. 환율상 경쟁력을 못 갖는, 즉 돈이 더 나올 곳은 없는 상황에서 쥐어짜기만 해 어떻게 회생하겠느냐는 물음에 대한 실리적 답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IMF의 태도 변화가 흥미롭다. 라가르드 총재는 그리스 지원 협상 결렬 직전까지만 해도 코앞으로 다가온 그리스의 IMF 채무 상환 만기에 대해 "단 하루도 연장은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데 지난달 30일 그리스가 실제로 IMF 채무를 갚지 못하자 곧바로 "이는 '연체'일 뿐이다. 즉각적 디폴트(채무 불이행)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크게 물러섰다.

라가르드가 태도를 돌변한 배후에는 미국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IMF는 여전히 '미국의 IMF'다. 옐런 의장과 오바마가 있는 것이다. 워싱턴 언론들에 따르면 옐런이 백악관에 "그리스 문제를 어떻게든 안정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고 한다. IMF가 그리스에 강경 대처해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면 Fed도 금리 인상이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그 뒤 오바마는 메르켈에게 전화를 걸어 "그리스의 유로 통화권 탈퇴는 막아달라"고 했다.

이후 우연의 일치라기엔 놀라울 만큼 IMF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그리스 부채를 30% 탕감해야 한다는 내부 보고서가 지난달 말 언론에 유출됐고, 5일 그리스의 유럽 채권단 긴축안에 대한 찬반투표 직전에는 IMF 스스로 이를 공개해 버렸다. IMF는 또 14일 다시 보고서를 내고 부채 탕감이나 30년 이상 상환 유예를 재차 주장했다.

한편 옐런 의장은 지난 10일 미국 내 한 포럼에서 "올해 후반 기준금리 인상을 위한 첫 조치를 취하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밝혔다. 15일 미 하원 금융위 통화정책 청문회에서도 "경제 상황이 기대대로 전개된다면 연내 어느 시점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데 적절할 여건이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에둘러 표현하는 것을 즐기는 이들의 화법으로 볼 때 이쯤 되면 금리 인상에 대한 Fed의 의지가 집념 수준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경제 부진으로 고뇌하는 중국에 큰 타격이다. 남중국해 등에서 중국의 패권 확대를 억제하는 데 금리 인상이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가능하다. 메르켈과 라가르드의 대치, 라가르드 뒤의 옐런과 오바마, 미·중의 패권 경쟁, 중국의 핵심 경제 파트너인 독일의 메르켈…. 생각보다 크고 흥미로운 그리스 사태다.